22일 문연 '뉴욕명물' 한국매장 달려간 현장, 1500명 꺅!… 기사 마감에 줄 중간서 포기ㅜㅜ
전라남도 여수에 가면 '군평선이'라는 생선이 있다. 금풍생이라고도 부르는데 작고 뼈가 억세지만 구워 먹으면 맛이 좋아 여수의 명물로 대접 받는다. 이 생선은 별명이 많은데 샛서방고기, '쌕쌕이' 등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샛서방고기는 워낙 맛있어 남편이 아닌 샛서방에게만 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쌕쌕이'는 아마 도 뼈와 비늘이 세기 때문에 부르는 이름이지 싶지만, 샛서방고기라는 야릇한 별호를 떠올리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22일 국내에 첫 선을 보인 쉐이크쉑버거는 발음 때문에 일명 '쉑쉑버거'라고 불린다. 뉴욕의 명물이라는 이 햄버거의 이름을 듣고 불현듯 여수의 명물 군평선이 생각이 났다. 억지로 꿰맞추자면 햄버거는 샛서방처럼 자극적인 일탈의 느낌을 더할수록 맛있다. 패티는 두꺼워야 제맛이고 베이컨이나 치즈를 듬뿍 추가하면 맛은 더욱 풍성해진다. 여기에 노릇하게 튀긴 감자에 느끼한 맛 잡아줄 시원한 콜라까지 곁들이면 나 오늘 이래도 될까 싶다가도 이 한 끼만은 칼로리 신경쓰지 않고 든든하게 배를 채워도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이제 다이어트에 지칠 때도 됐다. 뱃살 좀 늘더라도 그 한 입 베어 물면 근심과 걱정은 도리어 줄어들겠지. 이런 생각들을 안고 식단의 일탈을 위해 22일 강남역으로 향했다. 11시 오픈에 맞춰 쉐이크쉑버거 국내 1호점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30분. 그런데 웬걸. 이미 매장 앞에는 입장을 위해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아니 그것은 착각이었다. 줄은 매장 앞뿐만 아니라 건물을 감고 뒷골목으로 이어졌으며 족히 1km는 되는 것으로 보였다. 얼핏 봐도 1500명은 될 것 같았다.
22일의 서울 최고 기온은 33도. 뙤약볕에 햄버거를 먹겠다고 줄은 선 광경을 촬영하는 방송 카메라까지 보였다. 햄버거 먹겠다고 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린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나름 일탈을 결심하고 나섰는데 강남역 대로변에 카메라 플래시 받으며 버젓이 줄을 서기는 망설여졌다. 그래도 어쩌겠나 기왕에 오늘은 음식의 유혹에 기꺼이 넘어가리라 결심하고 나선 마당인데. 짐짓 뉴욕에서 먹었던 그 맛이 그리워 어쩔 수 없었다는 표정을 하고 긴 줄에 동참했다.
인내는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딘다는 뜻의 단어다. 점심께의 배고픔이 괴로움이라면 구태여 이걸 먹자고 이렇게 해야 하나 책망하는 내 안의 목소리를 견디는 것은 어려움이었다. 쉐이크쉑버거 측은 물과 음료 아이스크림, 우산, 선글라스 등을 제공하며 무더위 속에 '쉑쉑'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버거만을 기다리는 이들을 달랬다. 그래도 지나가는 사람마다 이게 무슨 줄이냐고 묻고, 햄버거를 먹겠노라고 이러고 있는 중이라고 답할 때의 멋쩍음은 피할 수 없었다. 지나가던 차들도 속도를 늦추고 이 진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진땀 흘리며 물을 나르는 직원에게 물으니 3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장 안에 들어가면 4군데서 판매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으니 금방 차례가 돌아올 거라고 희망을 줬다. 하지만 매장이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 서서 차례가 곧 올 것이라고 믿는 것은 난망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쩌자고 3시간 이상 기다려 기꺼이 햄버거를 먹으려 하는 걸까. 긴 줄의 뒤편에 서있던 고등학생 권규리(18)씨는 "몇 년 전부터 관심이 있었다"며 "사람들이 엄청 많은 것을 봤지만 5시간을 기다려서도 먹겠다"고 했다. 9시40분부터 줄을 서 2시간 만에 간신히 매장 입구가 보이는 곳까지 접근한 이모(20)씨는 "일본에서 먹어봤는데 비교하게 될 것 같다. 기대 반 걱정 반"이라고 말했다. 또 박모(20)씨는 "새로 나온 것은 먹어봐야 하는 성격"이라며 "햄버거가 햄버거겠지 싶지만 맛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곳의 대표메뉴 쉑버거의 가격은 6900원. 미국서는 5.29달러라고 하니 가격 면에서 현지와 큰 차이는 없다. 중요한 것은 맛. 이 버거를 먹기 위해 미국에 간다는 한 여인은 쉑버거의 장점으로 한 입 먹으면 이를 감싸는 포근한 번과 이어 입안을 가득 채우는 패티의 육즙을 꼽았다. 미디어 행사로 미리 경험한 기자들에 따르면 쉑버거의 맛은 현지 맛과 차이점이 거의 없다는 평이 우세하다. 미국식 버거에 익숙하지 않으면 다소 짜다고 느낄 수 있었지만 매장에서 직접 구운 소고기 패티의 식감은 남다르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무엇보다 패티 위에 녹은 치즈의 진한 맛이 이제 나도 건강 걱정 따위 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고열량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거 아닌가 하는 안도감을 줄 것만 같았다. 그것은 뭐랄까 이상적인 몸매를 규격화하는 식단의 전체주의에 맞선 해방구의 맛이 아닐까 싶었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쉑쉑버거를 포기하고 돌아서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햄버거를 채우고 있는 맛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다. 이탈리아 영화 '빵과 사랑과 꿈'에서 마을 경찰서장 역의 빅토리오 데 시카는 길에서 빵을 먹고 있는 가난한 노인에게 묻는다. 빵 사이에 무엇을 끼워 먹고 있나요? 노인은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 빵을 보여주며 답한다. "꿈을 끼워 먹지요." 생각의 힘은 혀끝의 감각보다 세다. 꿈이 사이에 든 햄버거. 어쩌면 이 많은 사람 들이 쉐이크쉑버거에서 맛보고자 했던 것은 늘 새로움으로 가득 찬 젊은 날의 여행 중에 만났던 그 햄버거의 추억이 아닐까.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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