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대비 80곳 설치했으나 이용 실적 거의 없어...소음, 안전문제 들어 반대 목소리도
[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일본 도쿄(東京)의 고층 건물 옥상들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헬기 이착륙장, 다시 말해 '헬리패드'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이용 실적은 거의 없다.
도쿄의 페닌슐라 호텔에는 하루 숙박비 1000달러(약 120만원)짜리 특실 손님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2007년 헬리패드가 마련됐다. 하지만 이곳 헬리패드를 이용한 헬기는 한 대도 없다.
도쿄의 고층 빌딩 가운데 헬리패드가 설치된 곳은 80개에 이른다. 세계 어느 도시보다 많은 수다. 그러나 대다수가 거의 이용되지 않고 있다. 지방ㆍ중앙 정부의 소음 규제 탓이다.
세계 최대 도시 도쿄에는 여전히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여전히 헬리패드가 설치되고 있다.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 대비해서라는 게 그 이유다.
북미 도시 가운데 헬리패드가 가장 많이 설치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처럼 도쿄도 불안한 구조단층 위에 자리잡고 있어 고층 건물이 이따금 흔들리곤 한다. 도쿄소방청에 따르면 당국이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헬리패드 설치를 주문한 것은 1990년경이다.
미 일리노이주 시카고 소재 '세계 초고층 빌딩 및 도시주거 위원회(CTBUH)'는 초고층 빌딩 건설계획ㆍ디자인ㆍ구조ㆍ시공ㆍ설비ㆍ환경 등을 연구하는 국제 민간단체다. CTBUH에 따르면 서울ㆍ부산의 경우 헬리패드가 설치된 건물은 각각 77개, 50개다. 이어 일본 오사카(大阪)에 43개, 로스앤젤레스에 41개가 마련돼 있다.
CTBUH의 제이슨 게이블 대변인은 최근 블룸버그통신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헬리패드가 많은 도시들의 경우 건물이 일정 높이에 이르면 헬리패드 설치를 요구한다"며 "그러나 헬리패드가 과연 효과적인 재난 대피 수단인지 논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가치로 볼 때 일본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미쓰비시이스테이트(三菱地所)는 2002년 이래 도쿄 상업지구 마루노우치에 짓는 고층 빌딩마다 헬리패드를 설치했다. 이들 헬리패드는 비상시 사람들을 소개시키기 위한 것이지 나리타(成田)공항이나 하네다(羽田) 공항까지 사람을 실어 나르기 위한 게 아니다.
헬리패드가 설치된 도쿄의 고층 건물 가운데는 도쿄도(都) 청사, 주상복합 쇼핑 타운인 롯폰기 빌딩, 마루노우치 빌딩도 포함된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가 재난 발생시 소방관 출동 및 시민 소개에서 헬리패드를 이용한다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해왔다. 재난 상황에서 헬기가 헬리패드에 이착륙하는 것은 몹시 위험하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당국은 1958년 고층 건물에 헬리패드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2년 전 이를 폐기됐다. 헬리패드 설치보다 신속 작동 스프링클러, 방화 엘리베이터, 소개 루트 등 첨단 시스템 설치가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로스앤젤레스의 스카이라인이 바뀌게 될 듯하다. 헬리패드가 필요 없으니 뉴욕처럼 뾰족탑 건물이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에릭 가세티 로스앤젤레스 시장은 "로스앤젤레스의 스카이라인이 한결같이 평평한 빌딩들로 이어져 있다"며 "방재 시스템이 개선되면 로스앤젤레스의 빌딩 디자인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페닌슐라 호텔 그룹은 홍콩, 태국 방콕, 필리핀 마닐라에서 VIP 고객들에게 헬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도쿄의 페닌슐라 호텔 측도 번화가 긴자(銀座)에서 공항까지 헬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이웃 상점주들과 협의 중이다.
헬기 서비스가 개시되면 호텔에서 나리타공항까지 자동차로 걸리는 시간의 절반 이상이 단축돼 30분 안에 당도할 수 있다.
도쿄의 페닌슐라 호텔은 2년 전 도쿄도 정부에 헬기 운송 서비스 계획을 제출했다. 2020년 도쿄 여름 올림픽을 겨냥한 것이다. 환경평가를 마친 당국은 페닌슐라 호텔 측의 계획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문제는 긴자의 상점주들이다. 이들은 소음 및 안전 문제를 들어 1만 시민의 서명과 함께 당국에 반대 탄원서까지 제출했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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