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검사장 출신 변호사 등 수사ㆍ재판기관 고위직을 지낸 법조인들이 나란히 검찰 칼날 앞에 섰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는 이날 최유정 변호사(46ㆍ여)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은 지난 9일 오후 전주에서 최 변호사를 체포한 뒤 그가 받은 수임료의 규모, 수임 내용의 성격 등을 확인해 왔다. 검찰은 최 변호사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51ㆍ수감중), 송창수 이숨투자자문 실질 대표(40ㆍ수감중)로부터 각각 50억원 안팎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 대표의 전방위 구명로비 의혹은 최 변호사가 수임료 반환 문제를 두고 반목하다 폭행 사건으로 비화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검찰은 최 변호사가 정 대표를 고소할 당시 고소장을 대신 제출하며 자칭 남편으로 알려진 이숨투자자문 이사 이모(44)씨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구속 상태를 면하게 해주는 대가로 최 변호사와 다리를 놔 줘 구명활동을 펼쳤다면 변호사법이 금지하고 있는 수임 관련 동업금지에 해당한다.
송 대표 사건 관련 ‘전화변론’ 의혹, 정 대표 사건 관련 연수원 동기 부장검사 접촉 논란 등의 경우 최 변사가 받은 수임료의 성격이 수사·재판기관 종사자와의 교제 대가에 해당할 수 있다. 동업금지 위반의 경우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 교제비 수수의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전날 검찰이 사무실과 주거지를 압수수색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57)도 본격적인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 그는 네이처리퍼블릭 고문을 지내며 정 대표의 수백억원대 원정도박 의혹에 대한 검ㆍ경 내사과정에서 세 차례나 무혐의를 받아냈다.
결국 100억원대 상습도박 혐의로만 재판에 넘겨진 정 대표에 대해 1심 재판부가 도박자금 정산 과정에서 법인자금이 유용된 정황을 지적했지만, 검찰 공소사실에 횡령이 포함되지 않거나 2심에서 이례적으로 구형량이 낮춰진 데 대해서도 홍 변호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 재직 당시 군인출신 전직 대통령들 비자금 사건, 박연차 게이트 사건 수사 등에 관여하며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도 브로커와 얽혀 있다. 정 대표 항소심 재판부와 접촉했던 고등학교 후배 이모(56ㆍ지명수배)씨가 정 대표에게 그를 소개했다고 한다. 검찰은 전담팀을 보강해 올해 들어 자취를 감춘 이씨 검거에 공을 들이고 있다.
홍 변호사는 정 대표 1심 변호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도 법정에 출석하거나 서면을 제출한 내역이 전무하다. 그의 역할은 검찰 영역인 기소 전까지, 기소 이후는 브로커가 활동한 정황이다. 검찰 관계자는 "제기된 의혹들은 모두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검찰을 떠난 이후 사사로이 수사진과 접촉한 적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이들 전관 변호사의 변론활동이 브로커들과 합종연횡해 이뤄진 '동업'으로 판명될 경우 탈세 및 불법알선 문제도 불거진다. 챙겨 받은 수임료의 실제 규모가 소득 신고 내역과 달라지는 데다, 실제 로비 착수 여부 및 성패에 따라 알선수재, 사기, 변호사법 위반 등 위법소지가 뒤따라서다. 검찰은 관할 세무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최ㆍ홍 두 전관 변호사의 탈세 혐의를 저울질하고 있다. 브로커와 동행한 수임내역이 다수 적발될 경우 상습범(10년 이하 징역)으로 가중 처벌 대상에 오를 수도 있다.
한편 정 대표의 구명 및 이권확대를 위한 전방위 로비 의혹 관련 '브로커 리스트'로 지칭되는 최 변호사의 접견 내역은 아직 검찰이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3일 최 변호사 사무실에 이어 9일 체포 당시에도 주변을 훑었지만 접견 내용이 담긴 음성파일이나 메모는 찾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잠적한 자칭 남편 이씨가 이를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