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 불안과 냉혹의 공식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
노력하면 더 잘살고 더 잘돼야 하는데 방황하게 된다니, 괴테가 말한 방황 안엔 실수와 고뇌를 비롯한 갖가지 애로사항이 담겨있는 것일까? 노력과 방황의 끝은 결국 죽음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작년 대한민국 사망자 수는 27만 5,700명으로 정부가 사망원인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3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고, 이 중 74.7%는 의료기관에서 사망했다.
지난 1일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방조제에서 성인 남성 하반신 시신이 마대자루에 담겨 발견돼 충격을 안겨준 데 이어, 나흘 만에 검거된 용의자는 어제(10일) 태연히 살해현장인 인천과 시신을 유기한 안산에서 현장검증을 진행했다.
피해자 최 모 씨는 의료기관이 아닌 도심 주택에서 살해당했다. 시체는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방조제에 상하반신이 토막 나 버려졌고, 사체 훼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피의자 조성호 씨는 혼자 들기가 너무 무거워서 절단을 생각했다고 답했다. 인구가 밀집한 도심 주택가와 대도시 외곽에서 일어난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사건은 이웃 간의 교류가 없고, 삶이 피폐한 청춘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저지른 범행이자 분자화 된 도시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이었다.
영화 ‘공포분자’는 현대화된 도시 속의 권태로운 인간군상을 다룬 대만 영화로, 구조화된 도시와 그 속에서 분자처럼 나뉘어 각자도생하는 현대인의 일상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파국을 정교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10일 조 씨의 현장검증이 이뤄지는 사이, 이를 지켜본 한 주민은 도대체 왜 그랬냐며 뻔뻔하다고 고성을 질렀다. 나와 관계없는 타인의 일상은 칸칸이 나눠진 주택의 벽을 사이에 두고 공기처럼 흘러간다. 그러다 사건이 벌어지고, 이슈가 되고, 여론의 화살이 그를 향하고 나서야 관심의 탈을 쓴 비난이 쇄도한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총에 맞아 쓰러진 한 남자가 방치된 풍경을 비춘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소년은 총소리에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담는다. 경찰의 신상정보공개방침에 따라 조 씨는 얼굴을 가리지 않고 포승줄에 묶여 언론의 무수한 렌즈에 노출됐다. 영화 속 총소리의 주범인 깡패와 일행인 소녀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데 깡패는 경찰에 붙들려가고, 소녀는 몸을 숨겨 자리를 피한다. 조 씨는 3년 전 의정부에서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애견카페를 운영했는데, 여자가 돈을 훔쳐 달아나면서 사업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차원적 접근법으로 영화와 사건을 병치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나 프로파일러를 투입, 조 씨가 밝힌 진술의 진위를 가리는 동안 이 사건을 사회적 현상으로 인식해보자면 영화 ‘공포분자’에서 드러난 인물들의 범죄와 폭력은 이번 사건 기저에 있는 현대 도시인의 불안에 대한 데자뷰처럼 느껴진다.
문화이론가인 프레드릭 제임슨은 영화 ‘공포분자’ 속 인물의 표현을 두고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구가 된 주체를 극화하는 방식’이라 해석한 바 있다. 조 씨는 사건 이후 SNS에 10년 치 경제계획을 올릴 만큼 자신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타개책 마련에 집착을 보였고,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아르바이트 중 만난 피해자 최 씨와 함께 지내던 중 그가 평소 자신을 어리다고 무시하며 부모님 욕을 해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룩이던 청년의 범죄는 행정과 치안의 감시망이 허술한 도시의 공동화, 극심한 청년실업과 역설적인 자기과시, 분노충돌조절장애와 타인에 대한 무관심 등이 뒤엉킨 비극적 살인사건으로 종결될 전망이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인간적 약점과 극단적 상황에서도 끝까지 붙잡아야 할 도덕성을 외면하고 슬그머니 감추려는 죄책감과 태연함이 자꾸만 조 씨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무차별적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번 사건에서 평범한 누구나가 갖고 있는 잠재적 공포분자를 엿봤다고 하면 허풍이 될까. ‘언제나 갈망하며 애쓰는’ 부유한 삶에 대한 간절한 염원, 도시의 일원이 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청춘 군상. 괴테의 말대로 아무래도 인간은 노력하면 할수록 방황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듯하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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