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과 '부의 도시 베네치아'
[아시아경제]하늘이 어둑하다. 바다는 검다. 에스메랄다호가 석호를 가로지른다. 검은 연기를 뿜으며, 황소처럼 긴 울음을 토해낸다. 저 멀리 갯벌이 드넓다. 강박관념처럼, 털어낼 수 없는 상념처럼 주제선율이 흐른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루치노 비스콘티가 감독한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원작은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Der Tod in Venedig)이다. 나는 소설의 주인공, 구스타프 아셴바흐처럼 음울한 표정으로 낡은 여객선을 타고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상상을 오랫동안 했다.
현실은 달랐다. 나는 지난해 9월 8일 쾌속선을 타고 한낮에 도착했다. 선착장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뭍에 오르자 그림자가 무릎 아래 매달렸다. 카페 '플로리안'에서는 주문을 잘못해 알코올이 들어간 커피를 마셨다. 곤돌라에 올랐을 때는 취기와 피로가 함께 몰려왔다.
다시 베네치아를 여행한다면 곤돌라를 타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나는 걷겠다, 리알토 다리도 걸어서 찾아가겠다고. 한때 지중해를 지배한 해상공화국, 그 위대한 역사는 바다에서 썼지만 기록은 뭍에 남았다. 베네치아공화국의 상징은 물고기가 아니라 날개를 단 사자다.
두칼레 궁전과 산마르코성당에서 내려다보면, 이 공간이 여전히 세계의 중심으로 남아 세계를 소환하고 있다는 상상에 빠진다. 산마르코성당의 입구, 지붕 아래 날개를 단 사자가 책갈피를 펼쳐 들었다. '복음을 전하는 자 마르코여, 그대에게 평화가 있기를(Pax Tibi Marce Evangelista Meus)'.
사자의 발아래 청동마 네 마리가 광장을 굽어본다. 금방이라도 박차고 달릴 듯하다. 청동마 네 마리는 원래는 콘스탄티노플에 있었다.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베네치아군이 약탈한 문화재다.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동부지중해의 역사를 바꿔버린 사건이다.
6세기 훈족에 쫓긴 로마인들이 리알토 섬을 중심으로 지중해의 석호 위에 나무기둥을 박아 베네치아를 세웠다고 한다. 쾌적하고 낭만적인 도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삶의 최전선이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 이렇게 썼다.
"가옥들은 밀집한 수목과도 같이 점점 더 높이 솟아올랐다. (중략) 한 줌의 땅을 다투면서 처음부터 협소한 공간에다 억지로 집어넣었기 때문에, 도로의 폭은 겨우 양편의 집들을 구분하고 시민에게 꼭 필요한 통로를 확보하는 것 이상은 될 수가 없었다.“
내다 팔 물건이라고는 봉골레(조개) 뿐인 베네치아가 지중해의 제왕이 된다. 이 공화국의 위대한 역사에 주춧돌을 놓은 두 인물이 있다. 피에트로 오르세올로와 엔리코 단돌로. 베네치아공화국의 국가원수인 도제(Doge)들이다.
로저 크롤리가 쓴 '부의 도시 베네치아'(다른세상)는 '오르세올로의 출항'으로 시작한다. 서기 1000년, 오르세올로는 아드리아해의 해적을 쓸어버리고 달마티아를 획득해 교역항로를 확보한다. 이 승리 이후 수세기동안 아드리아 해에는 베네치아에 도전할 경쟁자가 없었다.
단돌로는 1204년 십자군 원정대를 움직여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다음 막대한 부와 이권을 베네치아로 옮겨다 놓았다. 베네치아만 생각하는 사나이였다. 앞을 보지 못했지만 안목이 있었다. 그 안목은 현장 경험에서 나왔다. 단돌로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거절했다. 그런데 시신은 콘스탄티노플, 아야소피아에 묻혔다.
어떤 국가나 조직, 보병 소대나 분대, 록밴드 같은 동아리도 성공을 보장받으려면 뛰어난 리더가 필요하다. 로마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있었기에 한니발을 이기고 카르타고를 극복했다. 스포츠 팀이라면 철학과 지도력이 출중한 감독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거스 히딩크와 울리 슈틸리케가 축구대표팀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안다.
크롤리는 2009년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선정한 '세계 100대 글로벌 사상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에 대해서도 쓴다.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산처럼). 크롤리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추천한 책이다. 어렵지 않다. 순 전쟁 이야기니까 '삼국지(연의)'를 읽듯 하면 된다.
비잔티움 제국은 1453년 5월 30일 콘스탄티노플의 함락과 더불어 멸망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정규군 8만을 포함한 15만 대군으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다. 비잔티움 제국은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지원군을 포함하여 불과 7000여명으로 맞섰다. 중과부적.
그런데 궁금하다. 비잔티움 제국이 대군에 맞서기는 처음이 아니었다. 수많은 야만족의 침입을 앞선 군사기술(액체화약 같은)과 든든한 성벽에 기대 잘 막아내지 않았던가. 십자군이 점령해 라틴 제국을 세웠지만 끝내 되찾지 않았는가. '부의 도시 베네치아'를 읽으면 비잔티움 제국의 깊은 곳에 들어찬 피고름이 보인다.
그러니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을 이어서 읽다가 목에 가시가 탁 걸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크롤리는 102쪽에 이렇게 썼다. "황제는 자기네 왕가조차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나라가 망할 때 보면, 왕이나 재상 같은 자들의 집구석부터가 엉망이다. 모든 위험 가운데 오너 리스크가 가장 크다.
그래도 콘스탄티누스 11세는 황음무도한 황제가 아니었다. 제국을 수호해야 한다는 의지가 투철했다. 그는 전장에 목숨을 내놓았다. 오스만군은 그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황제의 표식을 모두 떼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사들이 콘스탄티누스 11세를 구해 대리석상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생겼다. 그렇다면 단지 불운했을 뿐인가?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지 이틀 뒤다. 그 결과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는 국가의 성쇠가 지도자에 달렸음을 안다. 그들이 곯아 있을 때, 국가도 곯는다. 그래서 모두 복기를 하듯 살펴본다. 누가, 무엇이, 왜 이런 결과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나는 왜 나온 지 오래 된 이 책들을 들춰보고 있는가. huhball@
◇부의 도시 베네치아/로저 크롤리 지음/우태영 옮김/다른세상/2만6000원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로저 크롤리 지음/이재황 옮김/산처럼/2만3000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