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연구에 봄을 잊은 나날들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바람이 불었다. 질병관리본부 본부가 있는 1동 앞에 매화꽃이 바람에 세차게 흔들렸다. 질병관리본부가 있는 오송역에 도착한 시간은 29일 오전 8시30분쯤. 쉴 새 없이 차량들이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 내로 들어가고 있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바람 잘 날 없는' 날들을 보냈다. 지난 22일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카 바이러스 확진 자가 나와 봄이 찾아왔건만 봄은 오지 않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느끼고 있다. 불어오는 세찬 바람이 이 같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취재기자와 카메라 기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기자들에게 질병관리본부를 둘러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최근 지카 바이러스 확진 자가 나온 만큼 질병관리본부의 이곳저곳을 볼 수 있는 것은 큰 관심사항이었다. 질병관리본부는 기자들을 먼저 혈청검사실로 이끌었다.
건물 2층에 있는 혈청검사실에 이르자 입구에서 약품 냄새가 코끝으로 밀려들어 왔다. 정영의 연구관이 "덧신과 가운을 입어야 한다"고 주의 사항을 알렸다. 혈청검사실은 감염병과 관련된 바이러스를 직접 다루는 만큼 음압시설이 갖춰져 있다. 밖의 공기는 들어오는데 안의 공기는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다. 20여명의 기자들이 덧신과 가운을 입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정 연구관은 "이곳에서 최근 지카 바이러스 확진 자에 대한 검체를 파악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순간 기자들의 눈빛에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지카 바이러스의 확진 과정은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검체가 의뢰되면 우선 검체처리실에서 핵산을 적정량만큼 추출한다. 이 핵산에는 RNA가 포함돼 있다. 지카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이다. 이어 혈청검사실로 보낸다. 혈청검사실에서 이를 증폭시켜 지카 바이러스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다. 확진 판정이후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DNA 염기서열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이 바이러스가 브라질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옆 건물에 있는 특수연구실험동으로 이동했다. 채희열 연구관은 굳게 닫혀있는 문을 가리키며 "이곳은 모두 음압시설이 갖춰져 있는 기밀문으로 이뤄져 있다"며 "특수고무가 문 틈 사이를 완벽하게 차단한다"고 말했다. 특수연구실험동은 이름 그대로 위험한 곳이다. 동물을 대상으로 실제 바이러스를 감염시키고 관찰한다. 감염균이 진짜 존재하는 곳이다. 백신을 투여해 진행과정을 지켜본다. 이 때문에 이곳에는 24시간 폐쇄회로TV를 통해 감시하고 있다. 자칫 사고가 나면 균이 바깥으로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험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창문으로 안에서 일하는 모습만 지켜봤다. 실험실 안에서는 마스크와 특수 장비를 착용한 연구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모든 부위를 특수 장비로 무장한 이들은 전체를 꽁꽁 보호받은 채 얼굴 모습조차 확인하기 쉽지 않았다.
그 중 두 곳이 눈길을 끌었다. 결핵과 메르스를 연구하는 곳이었다. 실험실 안에 있는 직원은 마스크와 보호 장구는 물론 호흡보호구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채 연구관은 "현재 이곳에서 실제 감염균인 결핵과 메르스를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짜 메르스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실험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안전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채 연구관은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연구해야 하고 집중도가 아주 높아 쉽게 피로해 진다"며 "2시간 정도 작업을 하고 30분 이상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들이 착용하는 보호 장구는 1회용이 대부분이었다. 안전을 위해 한 번 입고 폐기처분하는 시스템이다.
특수연구실험동에서 질병매개곤충과로 이동했다. 최근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가 이집트숲모기인 만큼 질병매개곤충과 역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먼저 표본실에 들렀다. 표본실 앞에서 신이현 연구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본실에는 40여종의 모기 표본이 나란히 배치돼 있었다. 너무 작아 눈으로 봐서 구분이 가지 않았다. 신 연구관은 "모기 표본은 워낙 작아 다루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모기뿐 아니라 참진드기, 설치류(쥐) 등의 표본도 벽에 걸려 있었다.
그곳에서 흰줄숲모기를 만났다. 지카 바이러스는 이집트숲모기가 매개체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살지 않는다. 다만 흰줄숲모기는 전체 모기의 약 2~3% 정도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 이 흰줄숲모기도 지카 바이러스 매개체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모기이다.
신 연구원이 아주 작은 흰줄숲모기를 현미경을 이용해 확대한 사진을 컴퓨터 모니터에 띄웠다. 화면 가득 흰줄숲모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리 마디마디에 흰색 밴드가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른바 전투모기라고도 부르는 흰줄숲모기는 폐타이어와 웅덩이 근처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 연구원은 "모기는 두꺼운 청바지도 천천히 뚫을 만큼 강력하다"며 "모기에 물리지 않기 위해서는 몸에 달라붙는 옷보다 펑퍼짐한 옷을 입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표본실에서 바깥으로 나와 매개곤충사육실로 향했다. 사육실 건물은 바깥에 따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이곳 사육실에는 빨간집모기, 작은빨간집모기, 흰줄숲모기, 토고숲모기 등이 사육되고 있다.
신 연구원은 "모기를 종류별로 나눠 사육하고 있는데 살충제 실험은 물론 유전체 연구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봄이 찾아 오고 있다. 본부가 있는 1동 건물 앞에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이 꽃을 직원들이 볼 여유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5월이 되면 모기가 활동을 시작한다.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비상경계를 늦출 수 없는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결핵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역학조사를 위해 현장에 나가야 한다. 공항과 항만을 통해 출입국하는 이들도 챙겨야 하는 검역소에서도 할 일이 많다. 여기에 최근 중동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시 메르스가 우리나라에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질병관리본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질병관리본부 앞에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여는' 이란 문구가 큼지막하게 서 있다. 그런 세상이 오기를 불어오는 봄바람에 실어 소망해 본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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