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북한이 한미의 '평양 진격' 훈련에 맞서 선제적으로 '서울해방작전'으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했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12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우리 군대는 적들의 '평양진격'을노린 반공화국 상륙훈련에는 서울을 비롯한 남조선 전지역 해방작전으로,'족집게식타격' 전술에는 우리 식의 전격적인 초정밀기습타격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언급한 '서울해방작전'은 적화통일 노선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1945년 일제해방 이후 북한의 대남전략은 이처럼 '강'과 '온'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형태였다. 1948년 9월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북한 정권은 한반도의 '완전한 통일'을 기본 목표로 설정했으며, 이듬해 신년사에서 김일성은 북한 정부 중심의 투쟁을 통한 통일을 촉구했다.
이후 1940~1950년대는 북한이 경제 발전에 대한 자신감을 토대로 남한에 대한 '적화통일', '무력통일'을 노린 공세적 대남정책을 펼친 시기로 평가된다. 그러한 시도의 비극적 결과가 1950년 발발해 참혹한 결과를 낳은 한국전쟁이다. 남침은 실패로 끝났지만 소련 등의 원조를 토대로 비교적 성공적인 전후 복구사업을 펼친 북한은 무력통일 전략은 잠시 뒤로한 채 '평화공세적' 대남 통일정책을 추구했다. 해당 시기 북한이 대외용 통일 방안으로 줄곧 고집한 것은 '남북총선거 통일방안'이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중국과 소련의 동맹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미중관계의 진전 등 국제적 '데탕트' 분위기가 점차 조성되면서 북한의 대남 정책도 대결과 대화가 공존하는 '양면적' 형태로 전환한다. 1972년 적십자 접촉을 시작으로 남북대화가 시작되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평양에 보내 남북 최고지도자간 소통을 시작했고, 결국 대화 노력은 '7ㆍ4 남북공동성명'을 탄생시켰다. 북한이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적인 단계로 상대의 제체를 인정하는 '연방제' 틀을 제안하고, 1984년 적십자사 명의로 수해물자를 제공하고 남북대화가 재개된 것도 이 시기다.
북한은 반면 정권 차원의 군사력 강화 노력 속에서 청와대 습격ㆍ동해안 침투 사건(196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1976), 아웅산묘소 폭탄테러 사건(1983), KAL기 폭파 사건(1987) 등 끊임없는 도발로 대결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결국 체제 경쟁의 줄다리기 속에서 북한의 핵심적 통일정책은 '3대혁명역량강화'(북조선ㆍ남조선ㆍ국제적 혁명역량)가 중심인 패권적ㆍ군사주의적 성격에 머물렀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1990년대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와 맞물리며 본격적인 남북대화가 펼쳐진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가 이어지고 믿었던 중국과 소련마저 한국과 수교하는 상황에서 체제 유지에 빨간등이 켜지자 북한이 수세적 입장에서 남쪽에 대화의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면 남한은 고속 성장으로 북한이 더는 실질적인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면서 남북관계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비록 북한 핵문제라는 복병이 등장하고 김영삼 대통령 때 추진됐던 정상회담이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되는 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남북 협력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구체화했다. 북한은 이후 국제적 고립이 심화하면서 1990년대의 '통미봉남'(通美封南)에서 2000년대에는 '통남봉미'(通南封美)도 적극 병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에서는 도발을 거듭하며 남북관계를 극도로 경색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남북관계의 '대통로'를 열자고 부르짖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치적 갈등과 화해의 파고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은 수차례 위기를 넘기며 운항중이고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차근차근 걸음을 내디디는 등 여전히 느리고 연약하지만 남북 경제 협력은 소통의 새로운 차원을 열고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여전히 남한 주도 흡수통일을 경계하면서도 2000년대 이후로 남북관계 효용성, 대화 필요성을 점점 크게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우리 정부의 북한 체제에 대한 인식이 북한이 대남 전략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바탕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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