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조, 최근 5년새 눈에 띄게 늘어나...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열악한 처우·불안정한 고용 환경에 뿔난 '장그래'(비정규직)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의 도움을 받은 '이수인'을 중심으로 뭉쳐 노조를 만들었던 대형마트 비정규직처럼 스스로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4일 서울시 산하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정흥준 고려대 BK21 연구교수에 의뢰해 지난해 실시한 전국 비정규직노조 실태 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새 비정규직 노조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1월말 현재 전국에 361개의 비정규직 노조가 결성돼 있었는데 이는 10년전인 2006년 한국비정규센터 조사 당시 305개에 비해 18.36%가 늘어난 수치다. 이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 반면 노조 조직률은 오히려 낮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라 사회적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진 2010년 이후 비정규직 노조 설립이 급증했다. 고용노동부의 노조 설립신고 현황을 보면, 2000년대 내내 한자리 숫자에 머물렀던 연간 비정규직 노조 신규 설립 숫자는 2010년 8개에서 2011년 21개, 2012년 15개, 2013년 20개 등으로 크게 늘어났다. 2014년, 20155년에도 각각 11개가 설립돼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처럼 새로 설립된 비정규직노조들은 대체로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정 교수가 181개 비정규노조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1.7%가 민주노총에 가입돼 있었다. 한국노총 소속은 3.9%에 그쳤다. 청년유니온ㆍ노년유니온 등 상급단체가 없는 노조도 4.4%를 차지했다.
드라마 미생 속에서 '장그래'가 기대했던 정규직들의 지원이나 연대는 역시 현실 속에서도 어려웠다. 비정규직노조의 63%가 이미 해당 직장에 정규직 노조가 있는 상황에서 따로 설립됐는데, 이유로는 '정규직노조의 한계 때문'(5점 만점에 3.49점)이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정규직 노동자 우려'(3.39) '정규직노조 거부'(3.26)가 뒤를 이었다. 비정규직노조 설립시 정규직노조의 지원이 없었다는 답변도 59.4%나 됐다.
오히려 노조 설립의 주체로 상급단체의 지원에 기대지 않고 비정규직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늘어났다. 노조 설립 주도 세력을 묻는 질문에 '상급단체 지원인력'이라는 답변이 2006년 조사에선 11.7%였지만 지난해 조사에선 9.6%로 다소 줄었다. 반면 '비정규직 내부 활동가'라는 답변은 20.1%에서 26%로 늘어났다.
단순히 노조만 만들고 만 것이 아니라 단체행동 등 직접적인 움직임에 나선 경험도 많았다. 설문조사에 응한 비정규직 노조 중 단체행동을 한 경험이 있는 곳은 89.7%에 달했다. 단체행동의 주요 이유로는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이 64.4%로 가장 높았다. '계약해지 등 고용안정 요구'가 18.5%로 뒤를 이었다. 앞으로 추진할 중점 사업으로 조직확대(39.6%)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임금ㆍ근로조건 개선(24.3%) ,법ㆍ제도 개선(20.1%), 비정규직 간 연대활동 강화(11.8%) 등의 순이었다.
한편 한국의 임금 노동자는 약 1700여만명으로, 노동조합 조직률은 약 10% 안팎이다. 이중 비정규직은 약 800여만명에 달한다.
정흥준 교수는 이에 대해 "전체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가운데 차별이 완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비정규직들이 스스로의 보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며 "사용자에게 고용안정이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비정규직들의 움직임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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