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양극화 지수 21년만에 최고치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 이주현 기자, 최서연 기자] 200만원이 훌쩍 넘는 패딩 점퍼를 사 입으면서 쌀은 몇 천원 아끼려고 자체 브랜드(PB)제품을 구입한다. 저렴한 것만 찾는 소비 패턴과 고가 제품에 과감히 지갑을 여는 소비 양극화가 점차 심화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중간 가격대는 상대적으로 판매가 되지 않으면서 유통업계는 할인 경쟁과 VIP 마케팅 등 투트랙 전략으로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올해도 백화점 실적은 제자리에 머무를 전망이지만 상류층이 애호하는 제품들은 불황을 타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 브랜드 몽클레어 패딩은 100만∼300만원의 가격에도 없어서 못 팔정도로 인기다. 특히 명품 시계는 남성들의 패션 아이템으로 각광받으면서 롤렉스, 위블로, IWC 등을 중심으로 매출이 크게 늘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명품 시계의 매출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1월까지 23개월 연속 매달 5% 이상 증가했다. 롯데백화점도 명품 시계 매출이 전년 동기(1∼11월) 대비 10% 가량 성장, 다른 제품군에 비해 매출 신장이 눈에 띄게 높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명품 시계 구입이 늘고 있다"며 "다른 건 아껴도 티를 내고 싶은 제품에는 돈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경향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을 중시하는 웰빙 트렌드에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럭셔리 식품족'들이 확산되며 프리미엄 식품관도 연일 호황이다.
이들은 식초 한 병에 7만원, 명품 고추장 세트 20만원, 36년 숙성 간장게장 25만원 등 고가임에도 불구, 명품 프리미엄 식품을 위해 과감히 지갑을 열고 있다.
반면 대형마트의 경우 2012년 의무휴업이 시행된 이후 4년 연속 역성장이 확실시되고 있지만 시중가격보다 20∼30% 저렴한 PB제품의 판매는 20% 가량 늘었다. 생필품은 조금이라도 저렴한 제품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홈플러스의 경우 PB제품 매출 비중이 2006년 7%에서 올해 30%까지 증가했다. 일반 쌀보다 20% 가량 저렴한 쌀이 불티나게 팔리는 등 화장지, 고무장갑, 복사지, 종이컵 등의 매출도 높다.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물, 우유, 라면 등도 매출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B마트는 물, 라면 등의 매출 비중이 전년 동기 대비 10% 가량 높아지면서 브랜드 제품을 추격 중이다. 이처럼 PB제품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은 일반 상품에 비해 품질이나 용량, 가격 등 모든 면에서 뒤쳐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4∼5년 전과는 달리 최근에는 저렴한 가격과 품질로만 승부하는 제품들과 일부 특정인들의 기호를 만족시키는 고가 브랜드가 동반 성장하는 극과 극의 소비심리가 하나의 소비패턴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발표한 '2015 한국의 소비자생활지표'를 살펴보면 소비양극화지수는 167로 1994년 관련 조사를 처음 시작한 이후 21년 만에 최고치다.
소비양극화지수는 소비 상류층 대비 소비 하류층 비율을 수치화한 것으로 2007년 지수를 기준(100)으로 소비자원이 산출한다. 수치가 높을수록 소비생활의 양극화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전월세와 같은 주생활비, 교육비, 의료비와 같은 필수소비 부담이 증가하고 물가상승에 대한 부담이 증가해 소비 수준에서 본인이 하류층이라는 인식이 증가하게 됐다"며 "소비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이주현 기자 jhjh13@asiae.co.kr
최서연 기자 christine8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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