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종길의 영화읽기]총 던진 본드, 변화에 짓눌린 007

시계아이콘02분 18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시리즈 24편 '007 스펙터'...다니엘 크레이그,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007 하차
샘 멘더스, 기존의 본드 공식 비틀었으나 개연성 부족
크리스토퍼 놀란 등 시리즈 부활 부담 느낄듯

[이종길의 영화읽기]총 던진 본드, 변화에 짓눌린 007 영화 '007 스펙터' 스틸 컷
AD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유머와 능청은 사라지고 고독만 남았다.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 여전히 유능한 스파이지만 상처 입은 남성의 표상이 됐다. 그럴 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다. 반세기 동안 세계는 격변했다. 냉전시대의 한 축이었던 소련이 해체됐고, 베를린장벽도 무너졌다. 새로운 상대는 베일에 싸인 테러리스트와 다국적 기업의 자본가. 적과 아군을 분간할 수 없는 시대에 MI6마저 통제하지 못하는 본드는 골칫덩어리나 다름없다. 그는 무기력에 빠진다. '스카이폴(2012)'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 유사 어머니와 같던 MI6 역시 스스로 존재 의미를 찾아야 할 만큼 입지를 위협받는다. 본드는 그 안에서 전용 자동차를 넘겨받지 못할 만큼 코너에 몰려 있다.


'스펙터'의 메가폰을 잡은 샘 멘더스(50)는 본드의 이 불안한 상황에 주목한다. 전작 '아메리칸 뷰티(1999)'에서 레스터 번햄(케빈 스페이시), '로드 투 퍼디션(2002)'에서 마이클 설리반(톰 행크스)에게 그랬듯 본드의 내면을 시각화하는데 집중한다. 그런데 그 색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53년을 달려온 '007' 시리즈의 두 줄기인 사랑과 악당까지 비틀었으나 실패에 가깝게 끝났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총 던진 본드, 변화에 짓눌린 007 영화 '007 스펙터' 스틸 컷


'스펙터'의 메인 악당 프란츠 오버하우서(크리스토프 왈츠)는 에른스트 스타브로 블로펠드다. '위기일발(1963)', '썬더볼 작전(1965)', '두 번 산다(1967)', '여왕 폐하 대작전(1969)' 등 '007' 시리즈에 여섯 번 등장한 본드의 숙적이다. 고양이를 품에 넣고 의자에 앉은 뒷모습이 '오스틴 파워' 시리즈의 닥터 이블, TV 애니메이션 '컴퓨터 형사 가제트'의 클로 박사로 이어졌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멘더스는 이 캐릭터를 그동안 시리즈가 다루지 않은 본드의 과거와 연결했다. 어린 시절 본드에게 스키를 가르쳐준 수양아버지 한스 오버아우서의 친아들로.


블로펠드는 본드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이유로 증오를 키우고 본드의 삶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생사를 넘나드는 스케일을 떠올리면 막장에 가까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내면과 감정을 드러내는 신은 유리벽을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가 전부다. 이를 아는지 본드 역시 블로펠드의 증오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는 '스펙터'로 대변되는 '여왕 폐하 대작전'의 스키 신도 나오지 않는다. 개연성 부족에 단순한 기대마저 저버리니 몰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총 던진 본드, 변화에 짓눌린 007 영화 '007 스펙터' 스틸 컷


멘더스가 바꿔버린 사랑 공식도 맥이 풀리기는 매한가지다. 앞선 스물세 편에서 본드가 진심으로 사랑한 여자는 '카지노 로얄(2006)'의 베스퍼 린드(에바 그린)뿐이었다. 이번에 나오는 매들린 스완(레아 세이두)는 그에 버금가는 캐릭터로 설정됐다. 이름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느를 홍차에 찍어먹으며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마르셀을 떠올리게 한다. 린드를 잃으면서 사랑과 믿음의 문을 닫은 본드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할 기회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스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상류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집안의 이름이기도 하다. 멘더스는 본드와 스완이 처음 만나는 장소를 사방이 하얗게 물든 알프스의 병원으로 설정하고, 스완에게만 검은 옷을 입힌다. 블랙 스완을 상기시키면서 다시 오지 않을 또 한 번의 강렬한 사랑을 예고한다. 실제로 본드는 '카지노 로얄'에서 린드와 그랬듯 달리는 고속열차에서 스완과 처음 사랑의 감정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둘 사이는 그다지 애틋해 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 전에도 후에도 특별한 연인으로 발전할 만한 동기나 조짐이 거의 나오지 않아 샘 스미스(23)가 보른 영화 주제곡(Writing's On The Wall)의 애절함이 무색해진다. 초반에 등장하는 서포팅 본드걸 루시아 시아라(모니카 벨루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본드를 유혹하기에 충분한 중년의 섹시미를 선보이지만 아쉽게도 한 차례 대화를 나누고는 퇴장한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총 던진 본드, 변화에 짓눌린 007 영화 '007 스펙터' 샘 멘더스 감독


'스펙터'는 액션에서도 많은 취약점을 보인다. 특히 극 초반 멕시코시티에서 헬기가 추락하는 신에서 엄청난 스케일을 조명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시리즈 특유의 긴박감을 놓친다. 후반 헬기가 권총에 맞아 추락한다는 설정에서는 멘더스의 오만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블로펠드를 돕는 미스터 힝스(데이브 바티스타)의 존재감도 미약하다. '문레이커(1979)'의 죠스, '골드핑거(1964)'의 오드잡처럼 과묵한 거구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액션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누구보다 이를 아쉬워할 바티스타는 미국프로레슬링(WWE) 시절 선보였던 피니시 기술 '파워밤 휩(다리 사이에 상대의 얼굴을 넣고 번쩍 들어 올린 뒤 그대로 내치는 기술)'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을 것이다.


멘더스는 본드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부여하면서 린드를 잃은 악몽까지 소환할 수 있었지만 해피엔딩을 택했다. 템스강에 권총을 던져버린 본드를 스완과 함께 유유히 사라지게 놓아줬다. 이번 영화를 끝으로 크레이그가 007 시리즈와 작별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 듯한 이 대목은 꼼꼼한 멘더스의 연출력에 흠집을 냈다. 형태만 남은 잿더미가 풀썩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다. 멘더스도 함께 007 시리즈를 떠난다. 007 시리즈의 새 지휘자로 거론되는 크리스토퍼 놀란(45)은 지금쯤 리부트(rebootㆍ재시동)에 부담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