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재고지수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재고량 증대→수익성 악화→성장력 악화 악순환
아웃도어를 비롯한 의류업체 재고 심각, 우유와 쌀 재고 증대로 농가는 항의 시위
제조업체 체감경기 갈수록 악화 반증
[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최근 수원의 한 쇼핑매장에서는 평소 세일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 아웃도어 A브랜드의 패밀리세일이 진행됐다. 이 곳에서는 55만원짜리를 단돈 5만원으로 내놓은 바바리외투를 차지하기 위해 여기저기 고성이 오갈 정도로 유치전이 뜨거웠다.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이 브랜드의 제품은 이날 대부분 2만~3만원대의 저렴이로 쏟아졌다. 제품을 사러 왔다는 A씨는 "요즘은 조금만 기다리면 이렇게 90% 세일하는 행사가 널려있다"며 "본 매장에서 정상가를 주고는 도저히 못 사입겠다"고 말했다.
#전남 진도에서는 최근 쌀값 하락을 항의하는 농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해보다 40kg 한가마에 1만원 가량 하락한데다 40만t의 쌀이 수입되는 것에 대한 항의차원의 농성이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 10만여 명은 오는 14일 서울에 모여 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집회를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창고에 쌓이는 물건이 늘어가고 있다. 재고율이 높아지면서 재고지수도 금융위기 당시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제조업체들의 체감경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같은 재고는 유통업계에도 심각한 상황이다. 한 푼이 아쉬운 기업들은 땡처리와 덤핑공세로 재고 축소에 나서고 있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자칫 싸구려 이미지가 씌워지는 데다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만 커지는 부메랑이 될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내수불황이 장기화할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재고량 증대가 수익성 악화로 직결되고 감량경영과 성장력 약화의 악순환을 우려하고 있다. 재고증가가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달 15일부터 18일까지 '블랙프라이데이' 출장 세일을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진행했다. 올해 2번째로 진행된 출장세일기간 동안 롯데백화점은 총 1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다녀간 고객만 70만명에 달한다. 이 기간 롯데백화점은 360여 개 브랜드, 500억원 물량의 여성패션, 스포츠, 잡화 등을 최대 80% 할인판매했다.
앞서 지난 7월23일부터 열린 롯데백화점 첫번째 출장세일인 '롯데 블랙 슈퍼쇼)'에 100만명이 방문, 13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단일 행사 규모로는 역대 최대치였다. 이 기간에도 역시 50~80%의 세일이 이뤄졌다. 롯데백화점의 이같은 세일 행사는 경기침체로 매출 부진에 시달리는 백화점과 재고로 허덕이는 제조업체간의 상호 필요에 의한 결과다.
경기불황이 장기화하면서 협력사들 재고누적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이를 타개하기위해 대형 전시장까지 빌려 '출장 판매'에 나선 것이다. 제조업체들은 최대 80~90%로 눈물의 땡처리를 하게 됐지만 이렇게라도 재고를 줄여야 자금이 돌고 신상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한 의류업체 관계자는 "백화점 매출이 크게 줄면서 재고 물량을 없애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내년 생산물량도 크게 줄여야 될 판"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한때 호시절을 보내다 최근 극심한 침체에 빠져있는 아웃도어업체들은 눈물의 땡처리를 반복하고 있다. 불과 3년 전 만해도 백화점 매출 신장률이 30%대에 달할 정도로 고공행진을 해왔지만 지난해부터 하락세를 보이며 성장률이 크게 둔화됐기 때문이다.
재고 소진 비상은 비단 의류업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근 유(乳)업계는 월급 대신 유제품을 지급하는 '우유페이'논란을 빚었다. 서울우유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직원들에게 직급별로 월급의 10~40%를 유제품으로 지급했다. 이를 액수로 환산하면 임원의 경우 200만~250만원 정도다.
서울우유의 우유페이는 계속되는 재고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우유 재고량은 26만7000t. 2년새 4배 가량 늘어난 수치다. 하루 원유 생산량은 6000여t으로 필요량보다 300여t이 많게 생산된다.
이처럼 재고 물량이 쌓이면서 유통업체와 제조업체들의 고민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 푼이 아쉬운 기업들은 땡처리와 덤핑공세로 재고 축소에 나서고 있지만 잦은 세일에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만 커지는 부메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도한 가격할인은 제조업체의 마진이 줄어들 수 밖에 없어 손해를 피할 수 없다"며 "재고 떨이 목적의 가격할인은 윈윈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선 브랜드 이미지가 나빠질 가능성이 있고 가격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제조업 재고율지수(재고ㆍ출하 비율)는 128.4로 전년 동월보다 5.6% 증가했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2월(129.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제조업재고율지수는 광업 및 제조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제품의 재고 상태를 파악하는 수치로, 2010년 100을 기준으로 작성됐다. 통계청이 지난 30일 발표한 9월 산업활동동향에서도 9월 제조업 재고는 한 달 전보다 1.6% 늘었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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