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스릴러 大戰...'더 폰' 손현주 vs '특종: 량첸살인기' 조정석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가을 박스오피스의 키워드는 스릴러다. 22일 개봉한 '더 폰', '특종: 량첸살인기'에 '그놈이다(28일)', '어떤 살인(29일)', '검은 사제들(11월5일)' 등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외화까지 '노크노크(22일), '이스케이프', '스파이 브릿지', '더 기프트(이상 11월5일)', '007 스펙터(11월12일)' 등을 차례로 내놓아 일부 영화인들은 "박스오피스를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스릴러"라며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더 폰'과 '특종: 량첸살인기'의 관계자들은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 이유도 똑같다. "주인공의 연기가 죽이잖아요."
▲'더 폰' 손현주 = 국내 스릴러의 대표주자다. 그 시작은 2012년 SBS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이하 추적자)'. 발에 불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도망을 다녀 충무로를 열광시켰다. 스크린에서도 질주 솜씨는 여전했다. 주연으로 열연한 '숨바꼭질(2013)'과 '악의 연대기(2015)'가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더 폰'은 그 연장선상을 바라본다. 손현주(50)에게 맡긴 역할부터 비슷하다.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화이트칼라. 싸움은 할 줄 모르지만 수사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그래서 '격투 못하는 리암 니슨'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당연히 이미지 소비에 대한 우려가 따른다. 그걸 모를 손현주가 아니다. 1990년 극단 '미추'의 단원으로 입단해 배우 생활만 25년을 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스릴러 영화만 계속 출연하네요. 다른 기회야 있었죠. 그런데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해내는 성격이 못 되거든요. 아무래도 지금이 영화에 집중할 시기인 것 같아요. 그동안 다양한 연기를 보여드렸으니 양해 부탁드려요."
'추적자' 출연 전까지 그는 주로 소시민을 연기했다. "커피자판기에서 동전 수거하는 사람 역할로 시작해서 20년 동안 내 안에 소시민이 축적됐어요. 최근 화이트칼라를 연기하지만 여전히 그런 역할이 가장 편하게 느껴져요." 그래서일까. 벼랑 끝에서 도망치는 그에게선 블루칼라의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누구도 흉내를 내기 어려운 그만의 힘이다. '악의 연대기'의 백운학 감독은 "(스릴러지만) 몸이 아닌 눈으로 얘기해달라고 했는데 아주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했다.
사실 손현주는 스릴러를 찍을 형편이 아니었다. 지난해 갑상선암 수술을 했고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한 달만 기다려라, 한 달 뒤면 촬영할 수 있다"며 스태프를 설득했고, 연일 밤 촬영을 강행해 '악의 연대기'와 '더 폰'을 연달아 내놓았다. "매일 밤에 출근해 아침에 퇴근하니까 마음이 우울해지더라고요. 스트레스도 많이 쌓였고요. 그럴 때마다 열심히 일하는 스태프들를 보며 힘을 냈어요. 그게 공동작업의 매력인 듯하네요."
손현주는 늘 약속된 촬영 시간보다 한 시간 이상 일찍 현장을 찾았다. 그 덕에 야간 신이 98%였던 '더 폰'은 추가 촬영을 두 번 밖에 하지 않았고, 제작비를 많이 줄였다. "배우가 무슨 벼슬인가요. 그저 스태프들과 똑같이 영화하는 사람이거든요. 남의 돈으로 찍는 영화인데 조금이라도 피해를 덜 줘야죠." 겸손하고 진정성 있는 자세가 더 좋은 작품으로 이어지는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주로 안방극장에서 사랑받던 손현주가 스크린에서도 대기만성을 이룬 비결이다.
▲'특종: 량첸살인기' 조정석="어떡하지, 너?" 조정석(35)은 영화 '건축학개론(2012)'에서 이 한마디로 스타덤에 올랐다. 지금의 위상은 신 스틸러 이상이다. KBS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2013)'에 이어 영화 '관상(2013)',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 등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알리더니 '특종: 량첸살인기'에서 단독 주연까지 꿰찼다. 운도 따랐지만 대기만성에 가깝다. 2004년 '호두까기인형'부터 지난해 '블러드 브라더스'까지 14년 동안 연극과 뮤지컬에서 다양한 연기를 했다.
"영화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무대에 오르는 기간에만 제의가 왔거든요."
'흥행배우'라는 수식어를 얻는 데 걸린 시간을 불과 3년. 연극과 뮤지컬계의 많은 이들은 쾌속질주가 당연하다고 입을 모은다. 작은 뮤지컬을 주로 해오면서 관객과 호흡하는 연기, 현실적인 연기를 많이 보여준 것이 영화에 녹아들었다는 평이다. 연극 '트루웨스트'에서 공연한 배성우(43)는 "거의 손발을 맞추지 못하고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배역에 빠르게 스며들더니 바로 엄청난 폭발력을 뿜어냈다. 뭘 해도 될 친구가 나왔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의 흡입력은 '특종: 량첸살인기'에서도 돋보인다. 조정석이 연기하는 허무혁은 이혼과 해고 위기에 몰린 기자다. 우연한 제보로 연쇄살인사건 관련 특종을 터뜨리지만 오보로 드러나 안절부절못한다. 영화는 배우에게 고난도 연기를 요구한다. 전반까지 블랙코미디의 정서로 흐르다 중반에 스릴러로 급회전한다. 조정석은 다소 어색해질 수 있는 흐름을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몰입만 잘 하면 문제될 게 없을 것 같았어요. 노덕(35) 감독이 강조하고 싶은 지점에서 힘을 주되 하나의 흐름을 이어가려고 했죠." 노덕 감독은 "화면을 혼자서 끝까지 이끌고 가는 힘이 대단했다. 시나리오에 표현된 인물보다 나를 훨씬 납득시켰다"며 "무엇보다 리액션이 좋아서 대부분의 컷들을 가능하면 살리려고 했다"고 했다.
조정석의 연기를 빛나게 하는 힘은 끊임없는 대화에 있다. "연기를 하기 전에 남들보다 더 많이 물어보는 것 같아요. '괜찮다'는 한 마디를 듣지 않으면 두발 뻗고 잠을 이루지 못하겠더라고요." 노덕 감독과는 동갑내기다. 아이디어를 편하게 주고받으며 보다 분명한 캐릭터를 완성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좋아'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기로 뭔가를 이루는 것만큼 재밌는 게 없거든요. 이 마음만 잃지 않으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겠죠?"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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