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홍익대 교수가 밝힌 '마천루 심리학'
공간에 대한 소유욕 충족…보안장치 신비감·우월감도
자신은 노출 않은 채 타인을 내려다보는 '관음증적 현상'
[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1층에 사는 사람의 시점이 '사람'이라면 100층에 사는 사람의 시점은 '신'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그 공간을 소유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공간에 대한 권력욕. 이것이 바로 펜트하우스에 살고 싶도록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왜 펜트하우스에 살고 싶어 할까'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를 만났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그의 건축사사무소에서다.
그는 부자들의 펜트하우스 선호 원인 중 하나로 '공간에 대한 권력욕'을 꼽았다. 유 교수는 "펜트하우스 선호는 자기는 안 보여주면서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일종의 관음증적 현상"이라며 "그것을 할 수 있고, 가능하게 해주는 공간이자 이 공간에 대한 권력을 가졌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펜트하우스"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스카이라인'보다 높은 위치와 전망을 극대화할 수 있는 큰 창문이 펜트하우스의 필수 요소라고 봤다. 저층 아파트에 살면서 안에서만 밖을 볼 수 있는 창문을 설치한다고 해서 흔히 말하는 펜트하우스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2층에 있으면 건너편 건물에 가려서 주변이 잘 안 보인다. 반면 높이 올라갈수록 시각적 '체적'이 올라간다"며 "높이 올라갈수록 더 많이 보이는데 이때 사람들은 보이는 공간을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더 좋은 전망을 위해선 창문의 크기도 중요하다. 아무리 사방이 뻥 뚫려 있어도 외부를 볼 수 있는 창문이 작다면 시야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뉴욕에 있는 펜트하우스의 경우 복층 구조가 많다. 층고가 높으면 더 큰 창문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보안 장치들을 갖춰 일반인들은 들어가기 힘든 구조를 갖췄다는 점은 펜트하우스의 신비감을 증폭시키는 요소다. 유 교수는 "'다른 사람은 못 들어가는 공간에 나는 들어갈 수 있다'는 것 또한 펜트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만족감 중 하나"라며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것에 대한 우월감을 통해 얻는 쾌락이 보안장치를 통과하는 불편함보다 큰 것"이라고 말했다.
펜트하우스는 도심에서 발생하는 소음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지면에서 떨어질수록 자동차 경적 소리 등 각종 소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펜트하우스가 부자들의 선호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펜트하우스란 쉽게 말하면 꼭대기 층이므로 걸어 올라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탓에 꼭대기 층은 동화 속 '신데렐라'나 '소공녀' 등 하녀들이 사는 일명 다락방으로 불렸다. 유 교수는 엘리베이터의 발명이 다락방들의 변신을 가능케 했다고 봤다. 그는 "엘리베이터가 있기 전에 가장 좋은 층은 홍수를 피할 수 있고 각종 소음과 냄새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2층이었다"며 "하지만 엘리베이터 덕분에 꼭대기 층의 단점이 기술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펜트하우스가 많은 뉴욕에 기존 스카이라인보다 높으면서도 좁은 '탑' 형태의 건물이 조만간 들어설 예정"이라며 "엄밀히 말해서 펜트하우스는 아니지만 꼭대기 층 펜트하우스는 공급이 부족하다 보니 사방을 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건물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펜트하우스 미래에 대해서는 "급격하게 증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주변보다 솟아오른 타워형 주상복합 형태에서 펜트하우스가 나타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아파트로 회귀하는 경향에다 판상형 선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한계"라며 "다만 국내 초고층 빌딩 건축이 증가함에 따라 뉴욕처럼 층고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