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평ㅅㆎㅇㅈㆍ유남ㅇㆍ지: 평ㅅㆎㅇ의 스ㅅㆍ로 사나희 ㅼㅡㅅ지 이시되
자탄규듕건국슈: 다만 안방 가온ㄷㆎ 건국 드리운 거ㅅㆍㄹ 탄식ㅎㆍ노라 "
(평생 절로 남아의 뜻이 있으되
다만 안방 가운데 여인네 머리쓰개 쓴 것을 탄식하노라!)
'기각(綺閣, 비단같이 아름다운 누각)'이라는 당호(堂號)를 지닌 조선 사대부 여성의 한시집 '기각한필(綺閣閒筆)'중 일부다. 이 인물은 충남 논산시 노성면에서 태어나 청양군 청양읍으로 시집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글귀에는 넓은 세상으로 나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싶어 했던 조선 여성의 내면을 읽을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조선 후기 여성이 한시를 향유한 정황을 알려주는 자료인 이 '기각한필'을 번역해 최근 발간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얼마 안 되는 여성 한시집 중에서도, 기각한필은 작자가 자신의 한시를 직접 한글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19세기 여성문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시집은 한시집이지만 우리말을 시제로 삼아 한시 원문을 한자가 아닌 한글음으로 적고, 그 밑에 다시 한글로 한시를 번역하여 기재하는 형식을 취했다. 기각의 오빠 ‘상회’로 기명된 시 2편을 포함해 총 249수의 한시가 수록돼 있다. 수박·감·개구리 등 주변 사물과 닭싸움·씨름 등의 일상 풍속을 노래하며 한가로운 풍취를 담아냈으며, 역대 명시(唐詩)의 한 구절을 시제로 삼아 창작하기도 했다.
기각한필의 역주 작업은 임치균, 부유섭, 강문종 등 연구원 소속 교수, 문학박사, 연구원 등이 참여했다. 연구자들은 "저자가 직접 필사했다고 추정되는 한글 원문과 그에 대한 해석을 토대로 한문을 추정해 원래의 한시(한문으로 된)를 복원했다"고 했다. 또한 이번 번역서는 고어를 현대어로 풀어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부록에는 장서각 소장 원본도 칼라로 영인해뒀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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