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녹조현상 맞이한 한강 하류·안양천 직접 가 보니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한강에서 20년간 쓰레기나 녹조(綠藻)를 청소해 왔는데, 올해 만큼 심각한 녹조현상은 못 봤어요. 40분 동안 (청소)작업을 했는데 벌써 배에 쌓인 부유물이 5t(톤)에 가깝잖아요. 조금 더 작업하면 10t은 걷어낼 수 있을 겁니다."
한강 청소업무를 수행 중인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소속 청소선(船) 5호의 박태화(50) 선장이 얼굴을 찌뿌리며 말했다. 한강(漢江) 잠실수중보 하류구간에 15년만에 처음으로 '조류경보'가 발령되자 조류더미 떠내기에 나선 것이다.
2일 오전 10시께 김동언 서울환경운동연합 도시생태팀장과 함께 찾은 서울시 강서구 염창동 안양천 끝자락. 한강 본류와 한강 하류 최대 지천인 안양천이 만나는 이곳에서는 코를 찌르는 듯한 악취가 풍겨왔다.
빠른 속도로 증식하는 남조류, 개구리밥, 쓰레기 등이 뒤엉킨 안양천의 수면 상태는 하수구를 연상케 했다. 가느다란 나무 막대를 넣어 부유물을 헤쳐봤으나 내용물을 확인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날 현장에 동행한 선상규 강서ㆍ양천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지난달 30일 안양천을 찾았을 때는 약 100m 구간에서 녹조가 번식하는 상태였는데, 시간 당 50m씩 빠르게 녹조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구부터 1㎞ 구간까지 증식한 상태다.
합수부에서 성산대교 남단에 이르는 한강 본류 1.2㎞구간도 심각했다. 안양천에 비해 물의 흐름이 원활한 편이어서 개구리밥, 쓰레기 등이 엉켜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면은 온통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했다. 군데군데 배를 드러낸 채 죽어있는 물고기들도 보였다. '마른 장마'에 남조류 증식이 활발해지면서 한강 하류 구간과 지류(枝流) 하천에서 생태계 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뭄ㆍ초기우수(雨水)ㆍ신곡수중보…'3박자'=올해 조류현상은 예년보다 농도가 높고 보름 이상 빠르다. 통념과 다르게 하류에서 상류로 번져나가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가뭄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최악의 3박자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5월 서울의 누적강수량은 153㎜로 예년의 60% 수준에 그쳤다. 가뭄으로 인해 팔당댐의 최근 방류량은 예년 대비 56%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6일 서울 등 중부지방에 내린 20㎜ 안팎의 적은 비는 수질을 더욱 악화시켰다. 지표면에 쌓인 각종 영양물질을 강으로 잔뜩 유입시키는 역할만 한 탓이다.
신곡수중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1988년 행주대교 하류 3㎞ 지점에 수위를 높이기 위해 조성된 너비 1007m의 수중보가 물 흐름을 막아 유속을 느리게 하면서 수질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환경단체들은 주장한다. 통상 한강은 조석 간만의 차에 의해 바닷물이 출입하는데 수중보는 이를 억제하고 있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김 팀장은 "빗물처리 용량이 부족한 난지물재생센터, 서남물재생센터에서 영양물질이 대거 포함된 초기우수를 그대로 방류하면서 남조류 번식에 필요한 조건을 만든 셈이 됐다"며 "이후 내린 비의 양은 3㎜에 그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가뭄 계속되면 녹조도 장기화 될 것"= 한편 현장을 돌아보던 김 팀장은 가뭄이 해결되지 않으면 일시적 진ㆍ퇴를 거듭하더라도 녹조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실제 3일 김 팀장은 "근본적으로 비가 와야 녹조현상이 해소될 수 있다"며 "지금의 기상상태로는 8월 이후까지 녹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도 이같은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예년의 사례를 볼 때 9~11월까지도 한강 녹조현상이 계속된 적이 있는데다, 앞으로도 마른 장마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서다.
전재식 서울 보건환경연구원 물환경연구부장은 "초가을인 10월에 녹조현상이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면서 "한강의 녹조 심화 여부는 기상 여건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