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샤프와 워크맨. 1980년대 초중고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기업의 상품명이 기기를 통칭하는 고유명사가 된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샤프펜슬을 개발한 일본의 샤프는 연필회사에서 시작해 전자업체로 성장했다. 쌀가게에서 시작한 삼성과 비슷하다. 워크맨을 개발한 소니도 한때 삼성전자가 극복해야 할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다.
그런 이들 두 업체의 요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자국 언론에서조차 소니의 몰락, 샤프의 몰락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한때 "삼성은 절대 소니를 이길 수 없다"던 자신감은 사라진지 오래다. 삼성이나 샤프, 소니 모두 전자라는 본업(本業)을 중심으로 한 한 우물 경영을 펼쳐왔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샤프와 소니는 글로벌 경쟁에서 변화와 혁신을 주저했고 사업재편이나 구조조정 등의 타이밍을 놓치는 우물 안 경영의 우(愚)를 범했다. 제지업에서 출발한 핀란드의 노키아, 기계장치를 만들어 판매하는 다나카제작소(田中製作所)에서 출발한 일본의 도시바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모든 한 우물 경영 기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할지라도 삼성과 같은 초우량 기업의 반열에 들어가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화장품 업계의 삼성이라는 아모레퍼시픽의 경우는 한 우물 경영을 통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국내외 경영자와 경영학도의 교본이 될 만하다.
아모레퍼시픽은 1932년 창업주의 모친 윤독정 여사가 개성에서 동백기름을 생산해 팔았던 것을 토대로 서성환 회장이 1945년 9월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창업해 작년엔 매출 4조7100억원을 기록했고 2020년에는 중국에서만 매출 3조원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시가총액(11일 종가기준)은 포스코를 제치고 코스피 6위로 뛰어올라 황제주가 됐다.
이 회사의 한 우물 경영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무리한 확장의 덫에 빠져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경제연구소와 신용금고, 정보기술, 광고회사, 야구단, 농구단 등을 매각하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기업의 핵심역량인 화장품 사업만을 남겨두고 비관련 분야는 매각하거나 청산했다.
당시 서경배 회장은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모든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핵심가치를 '뷰티(Beauty)' 한 가지로 정했다. 2000년대 저가화장품과 원브랜드(단일브랜드)로드숍의 공세에 맞서서는 강력한 브랜드파워를 가진 메가브랜드를 키운다는 전략으로 멀티브랜드숍 '아리따움'으로 대응했다. 1964년 에티오피아에 첫 수출을 시작으로 우물 안을 벗어나려 했고 1994년 중국에 진출하고 철저하게 현지화와 고급화 전략을 쓴 것이 주효했다.
서 회장은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기업경영은 공위에 서 있는 것과 같다며 "방심하는 순간 미끄러진다. 항상 긴장하고 미끄러질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우물 경영과 우물 안 경영의 차이, 기업의 성패도 결국 긴장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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