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자프로테니스(ATP) 경기에서는 라켓을 부러뜨리거나 집어던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세계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28ㆍ세르비아), 3위 앤디 머리(28ㆍ영국) 등 톱랭커들도 예외가 아니다.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코트 바닥에 라켓을 내동댕이친다. 테니스 규칙은 물론 코트 매너를 심각하게 저버리는 행위다. 세계적인 선수를 꿈꾸는 어린이 앞에서라면 더욱 보이지 말아야 할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거친 동작이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조코비치는 지난달 23일(한국시간) 미국 인디언웰스에서 열린 ATP투어 BNP 파리바오픈 단식 결승에서 로저 페더러(34ㆍ2위ㆍ스위스)를 2-1로 이겼다. 타이브레이크로 이어진 2세트에서 그는 더블폴트(주어진 서브 두 번 모두 실패하는 일)를 세 번이나 기록했다. 3세트 초반에도 실수가 이어지자 라켓을 코트 바닥에 내려쳤다. 그 뒤 경기는 술술 풀렸고, 끝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라켓을 부러뜨린 이유에 대해 조코비치는 "실수를 잊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타일러야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집중력을 되찾아야 했다"면서 "경기를 치르면서 겪는 중압감을 벗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조코비치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면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세계 최고의 실력자도 자신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감정을 조절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평온을 되찾는다.
조코비치 뿐 아니다. 국내 테니스의 간판으로 활약한 이형택(39)도 투어대회를 뛸 때 라켓을 무수히 부쉈다. 그는 "질 때마다 상당한 중압감에 시달렸다. 1년에 서른 번은 울었다"며 "특히 수비 위주의 플레이를 해서 지면 후회가 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라켓을 망가뜨리는 행위가 정당하지는 않다. 관중에게조차 예의를 요구하는 테니스의 품격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감정을 조절하는 것 역시 경기력의 일부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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