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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의 연기금 리포트]장타자 국민연금의 번트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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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운용사 단기수익률 보겠다고 나서

[이승종의 연기금 리포트]장타자 국민연금의 번트작전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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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야구에는 장타와 단타가 있다. 1,2,3번 타자가 단타로 베이스를 밟으면 4번 타자가 장타-홈런-를 날려 점수를 만든다. 단타보다 장타를 치기 어려운 건 배트를 들어본 이라면 누구나 안다.

연기금 시장의 최고 장타자라면 누구나 국민연금을 꼽는다. 국내 자산운용사의 연간 자금 회전율은 200%에 육박하지만 국민연금은 60~70%를 오간다. 그만큼 긴 호흡으로 시장을 바라본다는 얘기다. 듀레이션(평균 자금회수 기간)이 20 이상인 이 조직에게 다른 기관들이 목메는 월별ㆍ분기별ㆍ1년 수익률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수십년 후를 내다봐야 하는 국민연금에겐 3년도 극도로 짧은 기간이다.


올 들어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위탁운용 체계를 바꾸며 운용성과 평가 항목에 '1년 수익률'을 추가했다. 기존에 3년 수익률, 5년 수익률을 5 대 5로 평가하던 것을, 1년과 3년, 5년을 각각 2 대 4 대 4로 바꿨다.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 지시로 기금본부 내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1년간 논의한 끝에 내놓은 결과다.

국민연금은 위탁운용사의 잦은 체제 변경을 이번 개편 이유로 꼽았다. 위탁사 운용인력 등이 자주 바뀌어 중장기 수익률로 평가하기 마땅찮으니 1년 수익률을 대입하겠다는 말이다. 장기투자를 하는 자신들의 속성은 잊은 듯하다.


장기투자로 시장에서 이름이 알려진 이들을 만나 보면 시장 주기로 최소 2년을 꼽는다. 한 번 투자를 결정하면 최소한 2년은 지켜본다는 얘기다. 시장의 '소위' 장타자들도 이럴진대, 진짜배기 장타자인 국민연금 입장에서 1년 운운하는 건 낯간지러운 일이다. 한 기금본부 인사는 "유가ㆍ달러ㆍ유럽 등 시장 변동성을 키울 요인들이 산적하다"며 "변동성이 확대되는 시기에는 투자 시계를 길게 잡아야 하는데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돈 주는 이가 단기수익률을 보겠다는데 돈 받는 이들이 배짱 좋게 장기투자를 고집할 수 있을까. 장기투자는 수익률이 내려가고 올라가는 주기가 있다. 이를 쪼개어 단기로 보게 되면, 결과적으로 수익률이 올라갈 곳에 자금을 빼고 수익률이 내려갈 곳에 자금을 더 넣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국민연금이 외부에 위탁한 운용자산의 수익률을 높이려 이번 변경을 단행했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되레 평가 기간을 늘리거나 장기수익률 비중을 높일 일이다. 장기투자 위주의 국민연금이 단기수익률을 보겠다는 건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장타와 단타는 배트를 쥐는 방법부터 다르다.


국민연금 위탁사풀에 단타자들만 우글거리게 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이번 체계 개편을 통해 그런 길을 열어놓은 셈이 아닌가. 현재 20%인 1년 수익률 평가 비중이 나중에 얼마만큼 올라갈지 모를 일이다.


국민연금은 향후 70년을 내다본 재정추계를 기반으로 중장기 운용 계획을 짜고 자금을 배분한다. 장타자에겐 그에게 어울리는 역할이 있다.




이승종 기자 hanar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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