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년, 굽이 굽이 한 서린 남쪽 끝 그 섬에 가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바람 따라가듯/ 길 없어도 바다를 향해…/일곱 빛깔 영롱한 별빛아래/바다와 하늘이 몸을 섞으며 슬픔을 묻는 곳/ 그 섬에 가리/넘어지고 또 일어서고 돌아온 길 돌아다보며…/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서 있는/남쪽 끝 그 섬으로 나는 가리/(김정화 그 섬에 가리)
쉽지않은 길입니다. 전남 진도. 그곳으로 여행지를 잡는것은 참 힘든 결정이였습니다. 1년전 어느 봄날, 그 앞바다에 속절없이 침몰한 세월호의 비극이 드리운 그늘 때문입니다. 사고 이후 진도경기는 깊은 아픔을 맛보고 있습니다. 여행지를 찾는 외지인들의 발길은 뚝 끊어진지 오래고, 봄날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들녘도 적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굽이굽이 휘어지는 바닷가 마을에서 만나 한 아주머니는 "세월호 이후 사람(관광객) 구경 하기 힘들다며 빨리 경기가 회복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목소리는 메마른듯 푸석푸석합니다. 사고 여파로 인한 경기침체도 힘들지만, 세상의 무관심이 더 서운한 듯했습니다. 그럼에도 진도 사람들은 세월호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처지를 생각해 하소연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지인의 마음은 이러했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그 섬을 정면으로 대놓고 놀러오라고 말할수 없는 것이겠지요.
지면을 빌어 권해봅니다. 진도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아픔이 서린 팽목항을 찾아 미안함을 전해보고, 붉디 붉은 세방낙조의 아름다움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또 있습니다. 명량해전의 빛나는 현장과 신비한 바닷길, 깊은 상처에도 여전히 강건한 힘을 보여주는 동석산의 암봉이 그 곳에 있습니다. 따뜻한 봄날, 시인의 말처럼 남쪽 끝 그 섬으로 가보세요.
◇팽목항에선 누구나 침묵했다 그리고 두손을 모은다
해남땅을 지나자 진도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먹먹하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잔뜩 흐린 하늘은 을씬년스럽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태세다. 진도대교를 지나면 세월호는 피할 수 없다. 먼저 팽목항(진도항)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나뭇가지마다, 전봇대마다 집 담벼락마다 나부끼는 노란 리본들이 이어져 길을 알린다.
오래 묵은 방풍림을 두른 팽목마을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 너머의 실종자 가족의 이동식 주택과 분양소는 아직 슬픔이 고여있다. 무거운 마음 탓에 항구 쪽으로는 좀처럼 다가설 수 없다. 유족들이 마련한 분향소에서 304명의 숨결과 마주하자 밀려오는 미안함에 눈물이 고였다.
현재 팽목항 방파제에는 '기억의 벽'이 만들어지고 있다. 벽면의 그림 타일 하나하나마다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동화 작가들의 주도로 시작한 추모 타일 그리기는 지금까지 1700여장의 작품이 완성됐다.
'미안해','영원히 사랑해', '잊지 않을게'라며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작품은 물론 서투른 솜씨로나마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그림에 가슴이 찡하다. 전체 길이 170m의 '기억의 벽'은 4천여 개의 타일을 더 채워 참사 1년이 되는 내달 16일 완성될 예정이란다.
팽목항에서는 누구나 침묵했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거나 무릎을 꿇고 살포시 두손을 모을 뿐이다.
◇울끈 불끈 동석산 암봉에 서서 진도의 아픔을 달래다
팽목항을 나서 동석산으로 향했다. 산 하나가 그대로 암봉으로 이뤄진 산이다. 높이야 고작 240m. 그러나 밑동부터 온통 바위로 이뤄진 섬 속의 산이라 체감고도는 해발 1000m를 훌쩍 넘는다. 우뚝 솟은 봉우리들은 세워 놓은 칼처럼 날카로운 바위 능선을 거느리고 있다. 거기 서면 누구든 주눅이 들고 오금이 저린다.
동석산은 진도에서조차 그리 알려진 산이 아니었다. 진도의 산이라면 단연 첨찰산과 여귀산이 먼저다. 아마도 그건 오랫동안 동석산이 '오를 수 없는 산'이었기 때문. 험준한 산세 때문에 최근까지도 '입산금지'였다. 지금이야 바위에 난간을 대거나 밧줄을 매고, 문고리 모양의 손잡이를 박아 접근이 가능하다.
들머리는 종성교회쪽에서도 천종사쪽에서도 오를 수 있지만 아찔함을 맛보겠다면 종성교회 코스가 좋다. 그러나 밧줄에 매달려 거의 수직의 벼랑으로 오르며 칼날 같은 능선을 곡예를 하듯 건너야 한다. 거대한 암봉을 머리에 이고 있는 천종사쪽은 최근에 정비돼 비교적 순하다. 두 길은 천종사 위쪽 종성바위 부근에서 만난다.
동석산의 매력은 힘줄처럼 툭툭 불거진 암봉의 짜릿함과 함께 능선에서 펼쳐지는 장쾌한 조망이다.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능선을 따라가는 내내 어디에서든 고개만 들면 장쾌한 조망이 펼쳐진다.
천종사에서 올라와 닿는 중업봉은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의 특급 명소다. 봉암저수지와 봄맞이 준비에 바쁜 간척지가 펼쳐지고 그 너머로 팽목항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인다. 날씨가 흐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청명한 날이면 완도, 보길도는 물론 흑산도와 제주도까지 볼 수 있단다. 석적막산을 지나면 등산로는 큰애기봉을 지나 세방낙조전망대로 내려간다.
◇선혈처럼 붉디 붉은 세방낙조, 서해안 최고의 낙조명소
진도에서 만나는 낙조는 다른 곳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바다로 지는 해야 서쪽바다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세방낙조는 사뭇 서정적이다. 해질 무렵 섬과 섬 사이로 빨려들어가는 해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기상청은 세방낙조를 한반도 최남단에서 만나는 최고의 낙조로 꼽았다. 세방낙조는 해가 구름 뒤로 숨어 버린다 해도 그 맛이 조금도 덜하지 않다. 오히려 해가 다 떨어지고 난 뒤에 서쪽 하늘과 구름을 갖가지 색으로 물들일 때가 더 황홀하다.
세방낙조는 전망대보다 뒷산 중턱 나무계단 끝에 세워진 정자에서 볼 때 더욱 감동적이다. 손가락섬과 발가락섬 등 기기묘묘한 형태의 섬들을 품는 장관을 연출한다.
급치산 낙조전망대도 좋다. 급치산 정상의 군부대로 향하는 오름길 옆에 만들어진 급치산전망대는 고도가 높아 다도해 경관과 함께 더 크고 장엄한 낙조를 볼 수 있다. 호젓하게 전망대의 난간에 기대서서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과 그 섬 사이를 오가는 배들이 기울어 가는 해를 받아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가는 순간을 마주하면 가슴이 절로 저릿저릿해진다.
급치산전망대에서 세방낙조전망대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드라이브 코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경이 서럽도록 아름답다.
◇진도에 가면 이곳을 빼놓을 수 없다
'신비의 바닷길'이 가장 앞자리에 선다. 매년 봄ㆍ가을에 한 번씩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에 드러나는 바다 갈림길은 2.8㎞에 달한다. 마치 바다가 열리는 것처럼 보여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불린다. 오는 20일부터 24일까지 축제를 연다.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1808~1893)이 말년에 거처하며 여생을 보냈던 운림산방도 정취가 넘친다. 운림산방과 이웃한 절집 쌍계사는 툭툭 목이 떨어진 핏빛 동백들로 낭자하다. 고려 때 배중손 장군이 강화에서 삼별초군을 이끌고 와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았던 용장산성터와 여몽연합군과 격전을 벌이다 최후를 맞은 남도석성은 봄 풍경이 아름답다.
여귀산 아래 탑립마을의 길도 운치있다. 마치 진도아리랑 가락처럼 논두렁을 끼고 길이 유연하게 굽이친다. 이런 길을 걸어보면 유장하고 애절한 가락이 절로 떠올려질듯하다.
진도대교를 넘어서면 망금산 정상의 녹진 전망대다. 진도와 해남 화원반도 사이이의 울돌목(명량)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이순신장군이 정유재란 당시 이곳의 거센 조류를 이용해 12척의 배로 130여척의 왜선을 물리친 명랑대첩의 현장이다. 울돌목의 조류는 최고 시속 13노트(24km)에 달한다는데 이곳의 거센 조류는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아도 금세 알 수 있다.
진도=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가는길=서해안고속도로 종점인 목포나들목을 나와 영산호 하굿둑과 영암방조제, 금호방조제를 지나 77번 국도를 타고 가면 진도대교가 나온다.
△먹거리=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기 직전 왼편으로 '임하기사식당'(사진·061-535-3121)이 유명하다. 7000원짜리 밥상에 푸짐한 반찬이 나온다. 진도대교를 건너 우회전하자마자 우측에 있는 '진도통나무집'(061-542-6464)은 진도 사람들이 추천하는 간장게장을 내놓는다. 진도군청 부근 사랑방식당(061-544-4117)은 회무침을 전문적으로 내온다. 남도석성 가는 길의 배중손 사당 옆의 굴포식당(061-543-3380)은 졸복탕으로 유명하다. 갓 잡아올린 엄지손가락 굵기의 졸복을 된장국물에 고사리, 부추 등을 넣어 끓여 내오는데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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