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공무원연금개혁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 지겹도록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바로 '자체 개혁안'을 둘러싼 여야간 공방이다. '야당안을 내놓으라'는 여당과 이를 무시하는 야당의 반복적인 요구가 연금개혁을 논의하는 내내 나타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부터 공무원연금특위 간사인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 등은 "우리는 이미 내놨는데, 왜 야당은 가만히 있냐"는 주장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여당의 이런 요구가 지겨울 법하지만 야당은 꿈쩍 않는다. 아예 맞대응을 자제하는 식으로 여당의 공세를 피해간다. 여론도 "여당이 내놨으면 야당도 생각을 내놓는 게 형평에 맞는 것 아니냐"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아랑곳 않는다.
더 이상의 요구에 견디기 어려웠는지,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공무원연금대타협기구 활동이 끝날 때까지 야당안을 내놓을 계획이 없다"고 선언했다.
자체안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여당과 이를 거부하는 야당은 무슨 이유로 소모적인 기싸움을 벌이는 걸까.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공무원연금개혁 관련 공청회는 이에 대한 해답을 어렴풋이 보여줬다.
이날 공청회는 2009년 공무원연금개혁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마련됐다. 당시 개혁은 연금 지급률을 2.1%에서 1.9%로 낮추면서 연금 산정 기준 급여를 퇴직 전 3년 평균에서 재직기간 전체로 바꾸고 연금지급 개시연령도 신규 공무원부터 기존 60세에서 65세로 늦추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여당은 깎아내리기에 방점을 찍는 반면, 야당은 성과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새누리당 추천으로 공청회에 참석한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금개혁이 신규 공무원에 집중되면서 기존 공무원의 기득권 보호는 오히려 강화됐다"며 "공무원연금 재정개선효과가 미흡했다"고 진단한 반면 새정치연합 추천의 배준호 사회보장학회장(한신대 교수)은 "2009년 개혁이 없었다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정부 보전금은 16조원에 달했을 것"이라며 "개혁이 있었기에 실제 투입금액도 8조8000억원에 그쳤다"고 옹호했다.
당시 성과가 미진했다면 현 시점에서 개혁에 대한 명분이 강화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개혁의 추동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평가에 대한 여야 시각은 근본적으로 엇갈린 것이다.
즉 여당이 야당에 자체안을 내놓으라는 것은 이 때 성과가 의미없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하게 된다. 성과를 인정하려는 야당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필요가 없는 셈이다.
강 의장은 공무원연금개혁 공청회가 끝난 직후 기자와 만나 "여야 관점이 다르지만 당시 성과를 따지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언급했는데, '별도로 내놓을 게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대타협기구에서는 여야가 각각의 안을 갖고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논의 과정에서 나오는 의견을 종합하는 수준이 될 것이고 최종 결론은 보고서를 입법화하는 특위에서 내려질 전망이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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