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다. 소재나 방식은 더 다양해졌지만 정작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感)을 잡기가 어렵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그래서 전통방식의 회화나 조각이 편하다는 볼멘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예술작품을 보고 느끼는 이유는 색다른 경험에 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예술 감상을 통해 얻는 감동, 세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시각, 새로운 지식은 유희적 인간의 사고를 풍성하게 한다. 최근엔 이러한 예술을 보다 더 친근하게 접근토록 작가-관객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줄인 관객 참여형 작품들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관객은 작품을 마주할 때 쾌락과 불편함을 동시에 맞닥뜨리게 된다. 난해한 현대예술을 접했을 때 더욱 심해지는 이중적 감정이다. 관객이 작품을 평가할 순 있지만 보여주는 작가와 보는 관객 사이에 엄연히 권력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객과 작가가 맺게 되는 관계를 다시 전시로 되짚어 보는 장이 열리고 있다. 화이트 큐브에 걸린 작품, 영상매체, 음향, 설치 등 그냥 보면 흔한 현대미술 전시와 다름없지만 그 안에 비치된 작품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예술을 본다는 것'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오용석 작가가의 영상 작품은 '거의 모든 수평선'이란 이름을 지닌다. 2012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한 것으로, 영화 속 장면 중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수평선 부분만을 수집해 이어붙인 작업이다. 여러 영화장면들을 하나의 프레임이 아닌 여러 조각으로 나누면서도 끊기지 않고 영상을 틀어 보인다. 작가는 영화감독 또는 영상편집의 권력을 이야기하면서, 작품을 통해 이 권력을 해체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기존 작품에 대한 대항이기도 하다. 고창선 작가는 관객들이 물건이나 기계를 직접 작동하도록 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그 행동을 화면을 통해 볼 수 있게 하는 설치작품을 내놨다. 어떤 물체에 가까이 다가가면 크고 둔탁한 소리에 놀라거나, 생쌀이 뿌려진 밥상에 앉아 현미경으로 무언가를 바라보라는 지시에 따르는 관객들이 비춰진다. 그러한 모습을 보는 또 다른 관객은 이 예술체험이 참여형인듯 하면서도 작가의 의도대로 관객이 움직이는 수동적인 자세 또한 읽게 된다.
구동희 작가의 '안전바' 작품은 미술관의 금기사항을 비꼬는 듯하다. 화이트 큐브에 작품을 걸어둔 대개의 미술관들이 작품과 일정 정도 떨어져서 관람토록 선을 긋는 안전바를 바닥에 설치해 둔다. 작가는 이 같은 '안전바' 수십개를 바닥에다 무질서하게 깔아뒀다. 전시실을 빠져 나가기 위해서는 한 개 이상의 안전바를 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드문드문 재떨이와 담배 한 개비가 올려져 있는 모습이 재밌다. 금기를 깨뜨리고 싶은 욕망을 우회적으로 해소시키는 작품이다.
임상빈의 사진작품들은 수많은 군중들이 모인 장소들을 대상으로 한다. 세계적인 도서관 중 하나인 뉴욕공립도서관 앞 계단에 모인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담겨 있다. 작가가 3주 가까이 신전처럼 생긴 도서관 앞 계단을 다녀간 사람들을 찍은 이미지를 중첩해 프린트한 작품이다. 또한 붓 터치를 가미하고 굴곡있는 엠보싱으로 제작해 회화적인 느낌이 다분하다. 도시공학과 문화적 권력이 반영된 장소와 이곳에서 찍은 이미지를 작가가 개입해 편집한 것이다. 더욱이 작가의 편집은 풍경 속 대상들을 위로 갈수록 점차 작게 해 하나의 점을 향해 모이는 투시원근법을 과하게 설정해 조금은 위압적이며 낯선 느낌을 주고 있다. 작가는 "사회 구조와 개인, 도시와 인간의 관계를 담고 싶었다"며 "이미지를 만들어 재가공하는 것으로 '회화적인 사진'을 추구하고자 했다"고 얘기했다.
작품과 관객의 역학관계에 대한 도발적 질문을 담고 있는 이번 전시의 제목은 '숭고와 마조히즘'이다. 숭고는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의미하며, 마조히즘은 작가의 연출 하에 있는 관람객의 심리상태를 빗댄 용어다. 전시 기획자는 "상반되는 감정의 공존과 그 권력 관계는 현대예술에 있어서 작가 혹은 작품과 관객간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작품들을 통해 예술의 권력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오는 4월 19일까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미술관. 02-880-9504.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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