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규제완화는 양날의 칼입니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100일을 2주 가량 앞두고 금융감독 쇄신카드를 꺼내들자 시중은행의 한 부행장이 보인 반응이다. 쇄신안에는 금융사의 배당ㆍ금리ㆍ수수료 결정에 사사건건 개입하지 않고 종합검사와 현장검사 횟수를 축소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행장의 말처럼 업계와 소비자의 반응은 즉각 엇갈렸다. 특히 금융사의 경영 결정에 최소 기준만 제시, 일체 관여하지 않기로 한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입장차가 뚜렷했다. "이제야 우리나라 금융감독도 선진국형으로 가는 것"이라며 두 팔 벌려 환영한 업계와 달리 소비자들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규제 완화'라는 단어는 어느 순간 기업 활동에 숨통을 트여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를 살리는 처방전으로 인식돼왔다. 규제를 받는 입장에서 규제는 귀찮고 불필요한 장애물처럼 여기기 쉽다. 실제로 한 금융권 관계자는 "그동안 금감원이 이슈마다 흔들려서 금감원의 역할이 맞는지 헷갈릴 만큼 시시콜콜 간섭이 심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규제가 사라지면 반대편 이해관계에 자리한 사람들에게는 불편과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일례로 기업의 투자를 촉진한다면서 고용에 유연성을 부여하면 직원들의 고용불안정성이 커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번 금융감독 완화 역시 기업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대신 소비자의 금리나 수수료 부담이 커지는 결과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모든 규제 완화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규제 완화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이해당사자 간 충돌이나 규제 완화 의도와는 다른 반작용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규제를 만드는 것만큼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작업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규제를 만지는 사람들은 규제의 옥석을 가리고 다른 한 쪽의 피해를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쇄신방안에서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미흡했다. 금융사의 숨통을 틔우는 작업에만 몰두한 결과다. 규제를 만지는 사람일수록 더욱 세심한 판단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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