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2015년엔 새해 문화생활을 더욱 다채롭게 즐겨볼 생각이라면 미술관 문을 두드려보는 건 어떨까? 가족, 연인끼리 손잡고 미술관을 찾아 도슨트 해설도 듣고 작품들을 감상해 본다면, 눈도 즐겁고 문화적 소양도 쌓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주요 미술관들이 소개한 올해 '전시 라인업'에는 '로봇', '그림자'를 주제로 한 독특한 기획전부터 도심 유휴공간을 디자인하는 건축 공모전, 전통건축물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은 전시, 공존과 화합을 위한 '북한'에 대한 고찰 등 사회ㆍ문화적인 스토리텔링이 담긴 전시들이 마련돼 있다. 또 한국근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월북작가 이쾌대, '감독들의 감독'으로 불리는 천재 감독 스탠리 큐브릭, 덴마크의 패션 디자이너 헨리 빕스코브 등 작가를 집중 조명하는 행사도 눈길을 끈다.
◆로봇ㆍ그림자 등 기획전= 최근 들어 뇌과학, 기계 등을 소재로 한 전시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오는 4월부터 5개월간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주제로 한 '로봇 드림스'라는 전시가 열린다. 고도화된 기술문명 사회에서 인간의 창작행위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우연성'이 로보틱 아트를 통해 펼쳐진다. 전시 작품 중에선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 연구자 겸 아티스트인 패트릭 트레셋의 로봇이 특히 주목된다. 이 로봇은 예술가들이 대상을 지각하는 방식을 인지할 수 있게 한 '초상을 드로잉 하는 로봇'으로, 실제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린다.
3월부터 6월까지 서울 중구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는 '그림ㆍ그림자 현대회화전'이 열린다. 이 전시는 회화의 기원이 그림자에서 유래하며, 그림과 그림자의 어원이 같음에 주목한다. 모래로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드는 박진아(여) 작가와 회화ㆍ영상ㆍ사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세계적인 작가 헤르난 바스, 가상적 상황을 회화로 표현하는 데이나 슈츠 등 총 국내외 작가 13명이 참여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준비 중인 '한국의 포스트 모던 미술'도 눈길을 끈다. 그 동안 이 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미술 100년전', '전환과 역동의 시대전', '감성과 사유의 시대전', '민중의 고동전', '한국의 단색화전' 등의 맥을 이으면서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은 19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미술 양식의 도래와 전개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건축에 삶을 입힌 전시= 지난해 6월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조민석 건축가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뒤 미술계에서 '건축'을 주제로 한 전시들이 부쩍 늘었다. 단순히 '건축물'을 소개하는 것이 아닌 건축 전후의 이면들과 사회적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오는 10월부터 12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는 '유휴공간 건축디자인 및 도시 리서치'라는 전시가 펼쳐진다. 서울시내 유휴공간을 유용하게 디자인하는 건축 공모전이다. 지역조사를 통해 유휴공간과 지역사회가 지닌 역사와 정체성을 조명하면서, 낡은 것의 재생을 통한 새로운 가치의 생성을 보여줄 예정이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는 오는 11월부터 4개월간 '한국전통건축예찬' 전이 열린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전통건축을 관련 배병우, 구본창 등 유수 작가들의 사진과 영상, 고미술, 관련모형, 도면, 아카이브 등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전시다.
◆분단 70년ㆍ동아시아의 현재 = 광복 70주년을 맞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오는 7월 말부터 두 달 간 '북한 프로젝트' 전시가 열린다. 북한 관련 주제로 작품활동을 하는 국내외 예술가들의 작품과 북한 예술품ㆍ우표ㆍ포스터ㆍ선전물 등 컬렉션들이 한 곳에 모아진다. 전시 관계자는 "북한 작가와의 직접적인 교류채널을 확보하려고 노력 중인데, 정치적인 변수들이 있어 북한작가들의 작품들이 함께 소개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 전시는 북한에 대한 예술적 상상을 통해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대립상황을 넘어 공존과 평화의 공감대를 확대하고자 기획됐다.
매년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는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는 올해도 이 프로젝트를 지속한다. 비무장지대(DMZ) 접경지역 인근과 미술관 내의 전시를 통해 전쟁과 분단의 반세기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다. 이 미술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데올로기에 의해 단절된 역사를 지닌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지역의 현재를 '조화'의 개념으로 살펴보는 국제교류전 '불협화음의 하모니'도 개최할 예정이다.
◆스탠리 큐브릭, 이쾌대 등 개인전=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들의 개인전 또는 회고전들도 관람객들의 발길을 많이 끌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국내 작가로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오는 7월 열리는 '이쾌대'전시가 눈에 띈다. 이쾌대의 초기 습작부터 한국전쟁 포로수용소 시절까지의 작품들과 기록물 등을 총망라한 대규모 회고전으로, '월북작가'라는 왜곡된 시선과 '리얼리즘 미술의 대가'라는 신화에 가려져 있었던 이쾌대의 예술적 면모를 재발견하는 전시다. 이 외에도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한 첫 비디오 아티스트 박현기를 미술사적 위치에서 재조명하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다. 그의 작품과 아카이브 2만여점이 공개된다. 또 동양화가들이 1960년 창립한 미술단체 묵림회를 중심으로 한국화의 현대화에 앞장서 온 서세옥의 시기별 대표작을 볼 수 있는 전시(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와 한국 페미니스트 미술을 대표하는 윤석남(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과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인 여성작가 양혜규의 개인전(삼성미술관 리움) 등이 개최될 예정이다.
현재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림미술관은 오는 7월 헨릭 빕스코브 전시를 개최한다. 오감을 자극하는 패션쇼와 독창적인 패션 레이블로 주목받고 있는 덴마크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인 헨릭 빕스코브의 국내 첫 개인전이다. 작가는 패션뿐 아니라 음악, 영화, 설치, 퍼포먼스, 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예술세계를 구축해 온 아티스트로, 파리 패션 위크의 쇼와 파리의 팔레드 도쿄, 뉴욕, 런던 등 유수 미술관에서 전시를 연 바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 오렌지' 등 전설적인 걸작을 남긴 영화계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을 조명한 전시도 열린다. 오는 12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개최될 이 전시에는 큐브릭 감독의 작품에 사용된 1000여점의 의상, 소품, 필름, 대본 등이 비치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올 하반기 두 명의 외국 아티스트 개인전이 펼쳐진다. 철학, 문학, 영화, 연극, 오페라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에 뿌리를 둔 조형적인 실험을 펼쳐온 남아공 작가 윌리엄 켄트리지와 '불행한 아이들', '평범한 연인들' 등의 영화를 만든 프랑스 최고의 감독 필립 가렐이 그 주인공이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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