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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루이 14세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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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루이 14세와 박근혜 조영주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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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국정에 대해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했다. 자신의 계획을 꼼꼼히 숙고해보고 확실한 결정을 내린 후에야 장관들에게 전달했다. 그의 표정은 수수께끼 같아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그의 눈빛은 여우의 눈빛과 같았다. 그는 장관들 이외의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국정을 논하지 않았다. 신하들과 이야기할 때에는 그들 각각의 권리와 의무만을 전달했다."


"대통령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반드시 지켜내는 원칙주의자다. 가능하면 대면보고 대신 서면보고를 받는다. 서면보고를 꼼꼼히 살피고 파악해 지시를 내린다. 대통령의 표정은 변덕스럽지 않다.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에서도 필요한 말 외에는 말을 아낀다. 그가 강렬한 눈빛으로 쏘아붙일 때에는 꼬리를 내린 강아지처럼 쪼그라든다."

전자는 루이 베르트랑이 <루이 14세>라는 책에서 루이 14세를 표현한 글이다. 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스타일에 대해 한 측근이 전한 말이다. 18세기 초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와 21세기 초 대한민국의 '철의 여인' 박 대통령에게서 비슷한 점을 느낀다. 통치 또는 국정운영 방식에서다. 두 사람이 절대왕정 시대의 군주, 민주국가의 직선 대통령이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차별성을 갖고 있음에도 말이다.


루이 14세의 권력유지를 위한 통찰력과 단호함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그의 통치 초기 재무장관이었던 니콜라스 푸케는 1661년 총리 쥘 마자랭이 죽자, 스스로 총리가 되고 싶어 했다. 푸케는 영리했고 왕의 신임도 두터워 보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푸케가 총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왕은 2인자인 총리직을 없애려고 했다. 푸케는 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왕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했다. 왕에게 바치기 위해 직접 희곡을 쓰고 작곡을 하기도 했다. 모두들 "이렇게 훌륭한 파티는 처음"이라고 칭송했다. 다음 날 푸케는 왕의 근위대장에게 체포됐다. 석 달 뒤에는 국고횡령죄로 재판을 받고, 피레네산맥의 외딴 감옥에 갇혔다. 푸케는 그곳에 20년간 쓸쓸히 지내다 죽었다.

푸케의 후임은 장 밥티스트 콜베르였다. 콜베르는 국고에서 나온 돈을 반드시 왕의 손으로 곧장 가도록 했다. 왕은 푸케의 보르비콩트성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을 지었다. 바로 베르사유 궁전이다. 그전까지 대중을 위해 광장에서 발레공연을 열기도 했던 왕은 이제 베르사유 궁전에서 그들만의 연회를 열기 시작했다.


루이 14세를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 표현하면 '카리스마 짱'인 왕이었다. 그는 과묵했다. 우유부단하지 않았고 결단력이 있었다. 신하들은 그의 속마음을 읽기 힘들었다. 어떤 행동을 할지도 예측하지 못했다. 로버트 그린은 <권력의 법칙>에서 "루이의 과묵함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겁을 먹고 그의 지배력 아래 들어가게 됐다. 그것은 그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초 가운데 하나였다"고 했다.


박 대통령 역시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다. 값싸게 말하지 않았고, 한 번 내뱉은 말은 어떻게든 책임지려고 했다. 원칙을 벗어나면 가차 없이 정해진 데 따라 책임을 물었다. 그의 입술은 야무지고, 그의 눈빛은 단호하다. 그런데 카리스마 강한 대통령은 의사결정에서 함정에 빠졌다. 집무실보다는 관저에서 보고받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에게 직접 대면보고를 했다는 참모나 장관은 점점 줄어들었다.


얼마 전 '청와대 문고리 삼인방' '십상시(十常侍)' 논란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비선실세 의혹이 겹치고, 대통령 측근 간의 권력 암투까지 덧씌워지면서 청와대의 부끄러운 속살이 드러났다.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은 폐쇄적인 청와대와 독단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있다. 300년 전 루이 14세는 독단적인 결정과 절대적 권력으로 한 나라를 통치할 수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소통과 설득, 안되면 다시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움직인다. 아직 정권은 3년이나 남았다. 현 정권이 해야 할 일은 수두룩이 쌓여 있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반대로 마음을 잘못 먹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지금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가져야 하는 마음은 국민과 소통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부 측근들에 의지하는 의사결정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조영주 정치경제부장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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