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성경륭 前 국가균형발전위원장·청와대 정책실장
산학연 클러스터 구축해야 정책효과 제대로 본다
지자체장·지역大총장·공공기관장 자주 모여 토론하고
구체적 성공사례 연구…대통령도 나서 독려해야
[아시아경제 특별취재팀] 지난 3일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혁신도시 합동투자설명회에서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 설명회는 전국 10곳의 혁신도시에 있는 산학연 클러스터 용지를 팔기 위해 기업들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자리.
하지만 막상 주빈이 돼야 할 기업은 이곳에 없었다. 160석 규모의 회의장 좌석은 절반이 비었고 나머지 절반은 발표자로 나선 전국 각지의 지방자치단체 혁신도시 담당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이 채웠다. 그마저도 각 지자체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기 무섭게 빈자리가 늘어갔다.
국토교통부는 1년에 한 번씩 합동투자설명회를 열고 있지만 형식적인 실적 채우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투자설명회 대상자인 기업도 없는 채로 땅을 팔아야 할 당사자들끼리 설명하고 설명을 듣는 행사가 됐다.
최근까지 혁신도시에 입주할 151개 기관(세종시ㆍ개별 이전기관 포함) 중 약 100곳이 이전을 마치는 시점에서 혁신도시의 자족기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기업 유치 속도는 이 행사의 분위기로 가늠해 볼 수 있다.
기관이 이전을 마치는 내년이면 기반시설 건설공사는 모두 끝날 예정이어서 도시로서의 면모와 기능 강화에 역점을 둬야 할 정부와 해당 지자체로서는 답답한 상황이다.
행정자치부는 벌써부터 혁신도시 건설업무를 총괄하는 국토부의 관련 부서 인력 줄이기에 나섰다. 혁신도시 마스터플랜은 2030년까지 세워져 있지만 국토부 내에서 혁신도시 사업을 총괄하는 공공기관이전추진단은 내년 말이면 해체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혁신도시의 태동 배경이자 핵심인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대명제를 수행할 실무기관이나 컨트롤 타워가 사실상 사라진다. 문제는 없는 것일까.
참여정부 시절 초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혁신도시 마스터플랜을 총괄했던 성경륭(61·사진) 한림대학교 교수(사회학과)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성 교수는 "공공기관이 이전했다고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점"이라는 말로 정부의 혁신도시 추진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를 관통하는 핵심은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무엇을 위해, 도시를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따라 혁신도시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40대 후반에 혁신도시의 밑그림을 그린 그는 이제 환갑이다. 그동안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던 지 오랜시간 대화를 막힘없이 주도했다.
-공공기관 이전이 한창이다. 4년 넘게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 일하며 혁신도시를 기획하고 구체화했던 입장에서 평가해달라.
▲지금부터 진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지방 경제가 약화되고 지방의 인구도 줄고, 새로운 발전 모멘텀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혁신도시를 하나의 동력으로 살려야 한다.
그럴려면 산ㆍ학ㆍ연ㆍ관 협동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건 공사완료 전인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는 거다. 이걸 부동산개발사업으로 보면 지금 끝나가는 사업이겠지만 혁신도시는 도시개발사업이 아니다.
지자체도 이전하는 공기업을 세금이나 취업 문제로만 보면 안 된다. 아직 핵심으로 못가고 있다. 여전히 우리 동네 도시개발사업 비슷하게 보고 있기 때문에 답답하다.
-혁신도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정책효과를 보려면 산학연 클러스터 구축이 답이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큰 공공기관을 보내달라고 지역에서 난리가 났다. 막상 이전하고 나니까 아무 관심이 없더라. 사람ㆍ기관이 모여서 화학적인 융합작용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시·도지사, 지역의 대학 총장, 공공기관장, 지역 기업들이 모여서 밥도 먹고 협의도 해야 한다. 전남 나주로 간 한국전력은 산하기관, 협력업체만 해도 엄청나다. 감자는 하나를 캐도 감자가 줄줄이 따라 나오지 않나.
기초는 기초대로, 광역은 광역 지자체대로 전담인력 구성해서 지역 경제계, 언론 등이 모두 참여해 기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걸 찾아내야 한다. 자기 지역에 온 엄청난 가능성을 실현시켜야 한다. 경남혁신도시가 진주에 있다고 해서 그게 진주만의 혁신도시가 아니다. 광역적 차원에서 발전을 위한 구상이 있어야 한다.
-종전부동산 매각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는데.
▲애초 이전 완료 시기(2012년까지였지만 이명박 정권이 지나며 일정이 2년 이상 늦춰졌다)까지 땅과 건물을 다 팔게 하면 매각이 한 시기에 집중돼 공기업, 국가 재산에 손해가 날 수 있다.
그래서 원칙을 정했다. 각 기관이 판단해서 시장가격을 정해 조건이 좋다면 언제든 매각하게 하고 매물이 많아 제값받기 힘들 경우 정부에 위임토록 했다. 정부가 위임받은 물건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사들여 시기를 조절해 팔도록 했었다.
보고서 만들어서 자료를 해당 책임자에게 전달해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라고 신신당부했었는데 그대로 되지 않은 것 같더라. 일을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각각 목표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전체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훈수를 둔다면.
▲이제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돼 턴을 해야하는 시기다. 아이디어와 성공사례를 모아야 한다. '혁신도시 박람회' 같은 걸 만들어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는 게 좋은 방법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발표도 듣고 잘 한 곳은 상도 주고 그러면 많이 달라질 거다.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엄청난 변화가 있을 거다. 몽땅 모아서 공동의 발표, 회의도 하고 서로 배워야 한다.
혁신도시가 뭘 해야 하고, 뭘 했는지 콘퍼런스도 갖고 배울만한 사례도 발표하고 이걸 보태면 새로운 가능성이 나온다. 지금 지역발전위원회는 뭘 하는지 모르겠다.
성 교수에게 정권이 바뀌어도 혁신도시가 처음 계획한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즉답을 피했다.
"우리가 한 과제는 처음부터 대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수도권, 대도시 집중이 너무 심해서 경제지리학자들은 이걸 파멸적 집중, 파멸적 비대화라고 얘기했다. 강력한 정책이 필요했고 행정수도와 공공기관 이전은 이걸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고 봤다. 경제인들은 단기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지방이나 농촌이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국가가 이걸 '내셔널 어젠다'(national agenda)로 인식하고 청와대가 챙겨야 한다."
아쉬움이 많은 것 같았다. 그의 당부다.
*성경륭 교수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사회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이후 한림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참여했으며 당시 대선 공약이던 신행정수도 이전과 혁신도시 관련 계획 수립을 주도했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초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며 혁신도시와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관련 계획을 구체화하고 정책을 실현시켰다. 참여정부 마지막 청와대 정책실장을 끝으로 다시 한림대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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