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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가면을 쓴 예술가 '로맹 가리'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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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00주년 맞아 국내 첫 산문집 '인간의 문제' 출간

[Book]가면을 쓴 예술가 '로맹 가리'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 인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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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완전히 표현했다."

로맹 가리(1914~1980)는 파란만장하고도 복잡다단했던 자신의 인생을 이 같은 말로 맺었다. 이 유서에서 그는 프랑스는 물론이고 전세계 문단을 충격에 빠뜨릴 '커밍아웃'을 감행한다. 바로 소설 '자기 앞의 생'으로 프랑스의 노벨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받은 작가 '에밀 아자르'가 본인이라고 밝힌 것이다. 한 작가에게 절대로 두 번 주지 않는 공쿠르 상의 역사가 로맹 가리에 의해서 흠집이 나는 순간이다. 고루하고 젠체하는 문단과 평론가들에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원하게 한 방을 먹인 로맹 가리는 "한바탕 잘 놀았소. 고마웠소. 그럼 안녕히"라는 진짜 끝인사를 전한 후 권총을 입에 문다.


로맹 가리는 러시아 태생 유태계 프랑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자 외교관이다. 제2차대전 당시에는 공군 대위로 참전해 드골 당시 장군으로부터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기도 했다. 이 전쟁 중에 로맹 가리는 첫 장편소설 '유럽의 교육(1945)'을 써서 프랑스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이어 외교관으로 활동하던 중에는 '하늘의 뿌리(1956)'로 첫 공쿠르 상을 받으며 최고 작가 반열에 올랐다. 여기에 영화 '네 멋대로 해라'의 여배우 진 세버그와의 로맨스 역시 그의 유명세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올해는 로맹 가리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출판사 '마음산책'은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로맹 가리 작품들을 순차적으로 초역해 내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의 산문집 '인간의 문제'를 내놓았다. '하늘의 뿌리'를 내놓았던 1956년부터 그가 세상을 뜬 1980년까지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총 33편의 글을 엮었다. 이 책을 엮은이(폴 오디/ 장 프랑수와 앙구에)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 인간, 여자, 그리고 잘 돌아가거나 아니면 대부분의 경우 잘 돌아가지 않은 세계를 대상으로 한 그의 입장 표명, 해설, 성찰, 분석과 관련된 글"이라고 소개한다.


스타 작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로맹 가리는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자신의 작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혹평을 쏟아내는 평단에 반발심을 갖게 된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자기 앞의 생(1976)'과 '솔로몬왕의 고뇌(1979)' 등의 작품을 발표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프랑스 문단은 새 천재작가의 등장이라며 '에밀 아자르'에 열광했고, 그의 정체를 알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심지어는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하는 비난까지 서슴지 않았으니, 후에 그의 유서가 몰고왔을 파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Book]가면을 쓴 예술가 '로맹 가리'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 로맹 가리


'새로운 낭만주의'라는 제목으로 책에 실린 제롬 르 토르와의 대담(1977)에서 로맹 가리는 자신에 대한 세상의 오해에 대해 말한다. "수년 전부터 내게 할애된 기사를 읽으면 곰브로비치가 말했듯이 세상이 내게 '화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헌데 최근 주간지에 친절한 기사가 실렸어요. 거기에서 필자는 나의 얼굴이 집시 같다는 말로 문을 열었죠. 이런 종류의 허구는 아마도 딱히 '우리나라' 사람들 같지 않은 외모를 갖게 만든 나의 인종적 혈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요. (중략) 사람들은 내가 차갑고, 살갑지 않고, 무심하고, 적대적인 것으로 알고 있죠."


가면을 쓰고 살아야했던 예술가 로맹 가리는 민족주의, 제국주의, 식민주의에 대해서는 경멸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고, 인종을 초월해 약자, 소수자, 여성과 자연에 대해서는 무한한 애정을 표했다. "나는 절대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반대한다. 진리의 독점권을 가졌다고 믿는 모든 정치 체계를 반대한다. 서구 유럽식 민주주의는 지금 이런 정도에 이르렀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내 소설 전체의 진정한 관심사는 인간의 존엄성이며, 인간의 권리"라며 인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미국판 서문에서는 "식민주의, 민족주의, 인종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의 세균이 우리들 속에 잠재돼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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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냉소적이고 회의적이며 신랄한 문체와 말투로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늘어놓긴 하지만 작가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따뜻함과 낭만성을 내비치는 순간도 종종 있다. 산문집 '인간의 문제'는 로맹 가리를 둘러싼 화려한 스캔들을 걷어내고, 그의 내면을 탐구해보는 일종의 지도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밀물이 몰려들고 대양이 다가올 때 그 속삼임을 들어보자. 별이 사라지고, 수많은 하늘이 허공 속에 몸을 감춘 지금 하늘은 텅 비었으니! 우리는 홀로 남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희망을 아무리 멀리 내팽개쳐도 그것과 무관하게 어떤 힘과 위안의 약속이 있고 거의 그것은 확실하다. 바다가 그 희망을 항상 되찾아 우리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줄 것이다."('힘과 위안의 약속' 중에서)


(인간의 문제 / 지은이 로맹가리 / 엮은이 폴 오디 · 장 프랑수와 앙구에 / 옮김이 이재룡 / 마음산책 / 1만3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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