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사건도 많았지만 유난히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많이 들었습니다. 거시경제 전문가와 산업현장 모두로부터, 그리고 우리나라 전문가와 해외 전문가 양쪽에서, 우리나라가 경제적인 활력을 지나치게 빨리 잃어가고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심각한 문제와 제대로 맞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우리나라가 침체의 수렁에 빠져들지도 모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혁신가들이 필요합니다.
유수의 경영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은 매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을 선정하여 발표합니다. 올해로 10년째 해오는 일인데 여러 나라 기업 임원들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과 재무적 성과를 조합하여 혁신기업의 순위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올해 조사결과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은 애플이라고 합니다. 애플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은 구글입니다.
그런데 애플이나 구글에 크게 뒤지지 않는 혁신기업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기업은 2012년에는 3위, 작년에는 2위를, 올해는 다시 3위를 기록하면서 혁신적인 기업임을 뽐내고 있지요. 바로 삼성입니다.
삼성은 특정한 기업이 아니라 '삼성그룹'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애플이나 구글과 달리 삼성은 조선산업, 전자산업, 에너지나 정유업에서의 명성을 다 모아서 평가받는 셈이랄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삼성이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여겨진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셈입니다. 혁신기업 상위 50개 가운데 삼성 이외에는 LG전자(17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스톤컨설팅그룹은 좀 다른 조사도 했습니다. '아직 규모가 좀 작기는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혁신을 이루어내고 있는, 그래서 주목해야 할' 기업을 지목해 달라고 한 것이지요. 설문결과 기업 10개가 선정됐습니다. 다섯개는 미국 회사(왓츠앱, 스퀘어, 옥소, 오큘러스VR, 스플렁크)였고, 중국 기업(샤오미, 창청자동차)과 일본 기업(라쿠텐, 겅호)이 각각 두 개, 그리고 인도 기업(위프로)이 하나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샤오미가 '가장 혁신적인 50개 기업'에도, '눈부시게 성장해서 겁나는 10개 혁신기업'에도 선정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샤오미가 유일합니다. 세계의 기업 임원들이 샤오미에 대해 느끼는 경이, 공포, 혹은 질투를 짐작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중국 기업의 약진은 이처럼 과장을 좀 보태서 괄목상대 즉, 눈을 비비고 볼 때마다 다릅니다. 많은 언론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한국 제조업의 기회라고 보도했지만, 그 기회의 창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중국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태어나는 혁신기업들 때문입니다. 모바일 기기 영역만 봐도 샤오미를 이어 오포, 원플러스 같은 어린 혁신기업들이 줄지어 탄생하고 있습니다. 농업에서 중국에 대한 비교우위를 찾는 것이 더 낫다는,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주장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중국 기업들에 경탄하고, 또 힘 빠져 있을 상황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중국보다 더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혁신, 그것도 중소기업과 창업기업들의 혁신이 아니고는 우리 앞의 놓인 문제들을 풀 도리가 없습니다. 경제성장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 안정까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한 해외기관들은 사회적인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나라 중산층이 급감하는 상황에 이미 심각한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혁신기업이 없으면 우리 경제는 침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혁신기업이 대기업뿐이라면 우리 사회는 갈등으로 몸살을 앓게 될 것입니다. 오늘밤도 서울 구로와 역삼동에서, 경기도 판교에서, 대전 대덕에서 불 밝히고 있는 작은 혁신기업들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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