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 교육당국이 수능 세계지리 8번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피해 수험생 구제에 나섰다. 2015학년도 수능이 보름도 남지 않은 시점에 1년 전 수능 결과가 번복된 것이다. 내년 입시로 한창 분주할 대학들과 해당 문항이 오답처리된 1만8000여명의 수험생들, 그리고 올해 수능을 보게 될 학생들까지 '멘붕'에 빠졌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끌고 온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과 교육부는 어떤 대안으로도 바닥까지 떨어진 신뢰를 온전히 되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교육당국이 가장 우려했던 것도 바로 그 '신뢰'였을 거다. 지난해 처음 논란이 불거질 당시 전문가와 현장의 교사들 사이에서도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지만 평가원은 고집을 피웠다. '교과서대로만 풀었다면 문제 없다'는 논거를 굳건히 내세우며 '팩트'를 부정했다. 변명이 점차 '억지춘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과거 수능 화학에서 문제 오류 논란이 일었을 때는 일부 교과서가 잘못된 것이지 중요한 것은 '팩트'라고 해명해놓고 이제 와서는 정반대의 논리를 펴는 '자기부정'에 이르렀다. 1심 판결이 뒤집히자 당초 상고하는 쪽에 무게를 싣는가 싶더니 여론이 악화되자 결정을 차일피일 미뤘다. 그사이, 지난 소송에서 수험생들이 낸 수능사업비로 대형 로펌을 선임한 사실이 알려졌고 노조까지 가세해 성태제 전 평가원장의 독단을 규탄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어지면서 교육당국이 그토록 수호하고자 했던 '신뢰'는 이미 '흠집' 수준을 넘어 치명적인 외상(外傷)으로 번지고 있었다.
교육당국이 이번 사태로 입은 '신뢰 추락'의 외상은 사실상 오래된 '내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평가원 내부의 경직된 분위기, 교육적 판단보다 자신들의 '손해'를 먼저 따지는 안이한 태도, 사태를 초기에 수습할 수 있는 판단력 부재 등이 뒤섞여 사상 초유의 수능 대란을 일으켰다. 이 내상에는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할 것 같다.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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