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환영'.
딩~동 소리와 함께 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보는 순간 기분이 얼얼해졌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사이버 망명'의 환영 인사인가 생각하니 보트피플의 심경이 짐작되면서 심히 숙연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망명'이라는 엄숙한 단어를 옆집 개 이름처럼 뇌까리는 상황에 만감이 교차하는 게 아닌가. 이 묘한 기분, '텔레그램'이라는 배에 탑승한 요금치고는 비싸지 않나?
오해하지 마시길. 이번 사이버 망명의 이유가 누구처럼 세상을 뒤흔들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고,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 또는 이에 가입할 일말의 의도가 있어서도 아니며, 모든 정치적 조직ㆍ권력 따위를 부정하는 아나키스트적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호젓한 가을 한복판에서 가장 뜨거운 사회적 이슈라고 하니 검색→다운로드→설치→가입이라는 지극히 기계적인 과정을 묵묵히 수행해본 것이다. 사실은 텔레그램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호기심 반, 누가 쓰는지 호기심 반이 배경이라고 고백한다. 오로지 외부 요인으로 사이버 망명국에 머릿수 하나를 보탠 셈이다.
그런데 웬일인가. 이 망명국에 먼저 와 있는 지인이 220명을 넘는다. 900여명이 등록된 카카오톡의 4분의 1이다. 가입하자마자 '망명 환영' 문자를 보내준 모 그룹 임원이야 진보적 성향이 강해서 그렇다 치자. 야당 의원 몇몇이 보이는 것도 의아하지 않다. 하지만 평소 야당을 닭보듯 하던 보수색 강한 일부 교수들과, 여당의 유력 국회의원 몇몇과, 나랏일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고위 공무원들과, 자칭 보수라는 의사ㆍ변호사들이 망명국에 와 있는 것을 어찌 봐야 하나. 저들도 나처럼 호기심을 해소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감청이 두려운 것일까. 소문에 검찰, 경찰, 군인들이 먼저 사이버 망명길에 올랐다니 그들마저 이 조국을 등졌단 말인가.
지난달 16일 박근혜 대통령 발언으로 불붙은 '카톡(카카오톡) 감청 사태'가 어느덧 한 달을 맞았다.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검찰은 전날(15일) '필요 최소 범위'라는 알듯 모를 듯한 표현으로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아직도 아리송하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도 무탈하다는 것인가. 사이버 망명가들이 귀향해도 된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도 '사이버 검열'이라는 단어가 일상화된 나라꼴은 어쩌라는건지. 다음카카오의 상처는 또 뉘라서 어루만져줄 것인지. 하염없이 우울한 보트피플의 심경 금할 길이 없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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