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한 주요 경제단체의 비정규직 여직원이 정규직 전환 무산과 성희롱에 따른 압박으로 자살한 사건과 관련, 우리 사회의 여성 인권 인식이 도마에 올랐다. 이 경제단체가 수십만 회원사를 거느린 거대 조직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치부가 그대로 노출된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면 이번 불상사를 자성과 쇄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7일 경제단체 관계자는 "권씨의 정규직 전환 여부를 두고 인사위원회가 개최됐지만 비슷한 처지의 업무보조가 60명이나 있어 정규직 전환은 적당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년간 경제단체에서 비정규직(업무보조)으로 일하던 권씨(25세)는 지난달 26일 정규직 전환 실패를 비관해 목숨을 끊었다. 게다가 권씨가 유서를 통해 회원사 CEO들의 교육 프로그램 담당자로 일하는 동안 CEO들에게 여러 차례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유서 내용에 따르면 CEO들은 회식 자리에서 권씨와 블루스를 추자며 어깨에 손을 올리는 한편, 노골적인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권씨는 이메일을 보내 상사에게 성희롱 사실을 알리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문제의 경제단체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단체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계약 연장을 요구하는 등 불이익을 주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규직 전환을 논의했으나 다른 60명의 비정규직에 대한 형평성 등이 문제가 돼 정직원 전환이 없던 일로 됐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은 중소기업연구원의 조직 일부를 흡수했을 때 1명의 직원이 전환된 이례적인 사례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없었다는 점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비정규직 문제 뿐 아니라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 피폭당했다는 점에서 중차대한 문제다. 특히 이 경제단체가 박근혜 정부 들어 급격히 위상이 커진 것을 고려하면 "회원사 CEO의 개인적 일탈"이라고 해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드는 기업들의 이익단체이지만, 사회적 책임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존경받는 기업이 되려면, 그에 걸맞는 품격과 심성을 갖춰야 할 것이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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