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JSA 의문사’ 故 김훈 중위 아버지 김척 예비역 장성
-"훈이는 자살하지 않았다" 절규…아들 시신 16년간 창고에 보관
-"전우의 인권과 명예가 보호된다면 내 생애 보람"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그 누구에게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나와 아들은 누구보다 군을 사랑한다."
고(故) 김훈 중위 부친인 김척 예비역 장군(71)은 의미심장한 얘기를 전한 뒤 거리풍경을 응시했다. 신선한 가을햇살이 내뢰 쬐던 서울역 인근 카페테라스. 그곳 주변으로 말끔한 옷차림의 젊은 직장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역동적인 삶의 풍경을 지켜보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슬픈 일이 될 수 있다. 삶을 되돌릴 수 없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아들은 육사 동기들 중에서 총기 들고 구보하는 것을 제일 잘했다. 취미가 마라톤이다. 정신력이 강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데…." 김씨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하게 젖었다.
3성 장군 출신인 그에게 장교 아들은 자랑이자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별 셋을 달고도 아침에 병사들과 함께 윗옷을 벗고 운동했다. 나는 계급을 앞세워 폼 재는 것을 싫어했다. 마음속으로 내가 오만하고 거만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다짐했다."
김씨는 아들 역시 솔선수범하는 장교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16년 전 악몽 같았던 그날 이후 군인 부자(父子)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김 중위는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군 수사기관 정밀감식이 있기 전에 이미 '자살'로 결론을 내리고 상부에 보고됐다. 권총 자살이라면 반드시 나타나야 할 '뇌관 화약'이 오른손에서 검출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허점투성이 수사결과였다.
대법원은 "사고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히 결론을 내릴 수 없도록 했다"면서 초동수사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군은 철옹성 같았다. 김씨가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찾아 나선 시간은 16년이나 지속됐다. 3성 장군 출신 아버지의 호소에도 '자살'이라는 군의 최초 발표는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
28사단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 이후 군의문사가 다시 관심의 초점이 되면서 김훈 중위 사건도 모처럼 조명을 받았다. 김씨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여론이 관심을 가질 때 군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절박했다. 쉽게 달아오르고 또 쉽게 식는 냄비와도 같은 여론의 속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여론의 관심이 식으면 군의문사 유가족은 다시 처절한 외로움을 경험해야 한다.
김훈 중위 사건은 대표적인 군의문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김씨는 "언론에 계신 분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육사 총동창회까지 나서서 도와줬다.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김훈 중위 사건이 언급 됐다"면서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어떤 군의문사가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훈 중위 사건은 군의문사 처리의 방향을 결정할 상징적인 사안이다. 군내 사망사건을 섣불리 '자살'로 처리한 뒤 진상규명 요구는 외면하는 그동안의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김훈 중위 사건은 여러 차례 고비가 있었다. 해결의 실마리가 엿보이기도 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2년 8월 김훈 중위의 순직 처리를 정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군은 김훈 중위가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에 의해 자살했다는 것을 전제로 순직처리를 하려고 했다. 멀쩡했던 아들이 자살했다고 하는 것도 억울한데 우울증 때문이라니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김씨는 "순직처리를 해준다고 정부가 생색을 내려고 했지만 자식의 명예를 훼손하는 그런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일축했다. 원칙이 확고한 만큼 감내해야 할 현실의 아픔은 지속된다. 김중위 시신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벽제 군 보급대대 영현 창고에 있다. 언제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김씨 부부는 아들이 있는 곳에 갈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다고 한다. 군의 처사에 한이 맺혔을 김씨가 "누구보다 군을 사랑한다"고 말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 이유는 인터뷰 중간에 드러났다. 그는 자신이 싸우는 것은 군이 아니라고 했다. 자신이 맞서 싸우는 대상은 군의 잘못된 관행이지 군 자체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도 고생하는 훌륭한 군인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는가. 많은 전우의 인권과 명예가 보호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내 생애 보람이 될 것이다."
김씨는 세월호 유족의 마음도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유족은 아들, 딸의 죽음이 더 보람 있는 세상,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의미 있는 죽음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심적 고통을 감내하면서 진실을 찾으려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아들의 개인적인 명예회복을 넘어 군의문사 처리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되도록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씨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거듭 말했다.
"불행한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그 누구에게도…."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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