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태어난 인간으로 평생동안 '돈'이란 말을 몇 번 정도 할까. 돈이 있건 없건 돈만큼 대단한 관심사가 어디 있으랴. 늘 문제는 돈이며 결론은 돈이며 본론도 돈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돈의 뒷면에 새겨진 스토리들로 넘쳐난다.
'사랑은 돈보다 좋다'라는 노래는, 사랑을 노래하는 듯 하지만 실은 돈의 미칠 듯한 좋음을 노래하는 찬가이다. 돈을 경멸하는 것처럼 말하는 이도, 돈에는 초월한 듯한 사람도, 돈을 이미 지나칠 만큼 많이 가진 사람도, 돈이 인생에서 자주 켕기고 땡기고 어지럽히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무엇인가를 교환하기 위해 개발된 이 물건이 인간의 영혼 속에 들어와 귀신보다도 더 강력해진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브라질 영화인 듯한 <어린 창녀의 노래>라는 아주 발랄한 영화 한편은, 매춘을 하는 어린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들은 몇 헤알화를 벌기 위해 몸을 팔면서도, 영혼을 팔지는 않는다. 그 씩씩함이 공연히 그 밑바닥보다 조금 윗바닥에서 사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돈'이란 발음은 외국인들에겐 어떻게 들릴까? Don't. 하지마! 이런 말로 들릴까. 머니라는 영어가 우리에겐 '뭐니?' 처럼 들리는 것과 비슷한 사정일 것이다. '돈'이란 말은 짧고 가볍고 모질지 않아보이는데,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한없이 무겁고 한없이 결리며 한없이 그악스럽다. '돈'이란 말은 돼지처럼 뚱뚱하며, 그것에 돌아버린 '돈 자식'같은 느낌을 지니며, 그래서 돌아와야 할 돈이 늘 다시 돌아가버리는 그런 도로묵의 이미지로 뱅뱅 돈다.
돈이 들어오면 얼굴이 펴지고 마음이 느긋해지며 명랑해지기도 하고 교만해지기도 한다. 돈이 나가면 그 반대가 진행되어 인생의 살 맛을 줄인다. 무의식 속에 찍혀있는 돈이 인간의 생각과 욕망과 가치와 성정과 감정과 희망 혹은 절망까지를 지배한다.
피도 눈물도 돈보다 위력적이지 않으며 돈 앞에선 피도 눈물도 없어진다는 것. 우린 그걸 비판하고 혀를 차고 분개하며 슬퍼하지만, 다시 돈 앞에 매인 삶을 만날 수 밖에 없다. 돈을 뛰어넘는 삶, 돈에서 풀려난 삶을 그리워하지만, 이승에는 그런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필요하지 않은 돈을 가진 사람과 필요한 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동거하기에 생겨나는 긴장감이야 말로 현실 풍경의 진면목이다. 우리의 모든 불안들은 돈으로 번역된다.
탄생도 돈이며 죽음도 돈이다. 우린 가끔 혹은 자주, 돈 몇 푼에 영혼을 조금씩 팔아왔는지 모른다. 지금 남은 것은 돈이 구입해 가지 않은 남루한 영혼의 누더기 한 벌이 전부인지 모른다. 돈과 자아를 분리하는 이성적 분별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스승이나 학교는 없지 않던가.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