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몰랐는데 오랫 동안 가만히 나를 좋아해온 사람이 있다. 좋아한다는 일,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일 것 같기도 하고, 혼자서만 하기엔 외로운 일일 것도 같은데, 웬 일인지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잘해준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리 매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또 한결같은 사람도 아닌데다, 때로 나도 알 수 없는 얄궂은 사람인 데도, 그걸 다 지켜보면서도 그냥 좋다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 좋은가요, 혹은 왜 좋은지요, 라고 그에게 묻는 것은 우습다. 무엇이 왜 좋은 지를 묻는 그 질문 속에는,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살아온 나의 오래된 어리석음이 숨어있는 지도 모른다. 그런 물음에 대한 그의 한결같은 대답은, ‘그냥’이다. 그냥요. 그러면서 빙긋이 웃어보인다.
그, 그냥에 나는 손을 들고 말지만, 슬그머니 자꾸 미안하다. 좋아하는 일이란 대가를 바라는 일은 아니지만 희망을 품을 수는 있는 일이 아니던가. 좋아하는 일 또한 목숨의 일이어서 피어나고 지는 순환을 겪는 것이 아니던가. 그라고 어찌, 나를 그냥 계속 좋아할 수 있겠는가. 유한한 시간을 쪼개 좋아하는 것인 만큼 좀 더 귀하게 마음을 쓰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는가. 내가 아닌 더욱 좋은 관계를 위해 그 좋은 마음을 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찌하여 그 마음을 낭비하는가. 그러나 그는 불평도 섭섭함도 혹은 지치는 표정도 내비치지 않는다. 그냥 오래 전 서있던 거리, 오래 전 서있던 자리, 오래 전 그때의 얼굴로 지키고 있다. 내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나의 삶 골목골목마다 그저 나타나 선물을 안기거나 축하를 한다. 문득 쥔 그의 손은 처음 그때보다 더 따뜻해지지도 않았지만 조금도 열이 식지 않았다.
이 좋아함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가 아니던가. 혹은 사랑으로 나아가는 여울이 아니라 살아가는 날들에 품는 체온같은 게 아니던가. 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인지는 알 수 없다. 고맙게도, 미안하게도, 그냥 나를 좋아하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말, 아끼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주 말하지도 않았다. 공기와 같이 숭늉과 같이, 내 몸에 그 마음이 들어왔다. 이걸 주고받는 문제로 생각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그가 준 것을 갚을 수 없을 걸 안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 같은 마음을 준다. 말없이 그냥 나를 지켜보며 그는 살아가고, 나는 가끔씩 그를 잊기도 하며 살아간다. 돌아본다, 문득. 나를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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