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朴·MB '소방수' 하던 김무성의 大望

시계아이콘03분 24초 소요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글자크기

[아시아경제 최은석 기자] '김무성의 시대'가 열린 것일까. 지금까지는 그의 구상대로 흘러오고 있다. 새누리당이 어려울 때마다 당의 중심을 꿋꿋이 지켜온 중진의원이자,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어낸 킹메이커였던 그가 이제 대망(大望)을 꿈꾼다.


김 대표와 그의 측근들은 '대권'이란 말에 손사래를 치지만 정치권에서 그의 대권 도전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당원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면서 당의 대표가 됨으로써 그의 꿈은 이제 한발짝 다가간 듯하다.

김 대표가 가장 인상적인 기억을 남긴 것은 당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다. 정치인 김무성의 그릇도 그때마다 커졌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는 크게 흔들렸다. 당 대표를 지내며 각종 선거를 모두 승리하면서 당심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했고 지지율에서도 앞서던 박 후보가 당내 세력이 없던 이명박 후보에게 밀리면서다. 박 후보 캠프는 선거 전략을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한 뒤 이명박 후보에 대한 각종 공세를 펼쳤지만 효과는 없었다. 캠프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김 대표는 직접 캠프를 진두지휘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김 대표는 우선 캠프 관계자들의 숙식까지 일일이 챙기면서 내부 분위기부터 다잡았고 추격의 계기도 만들었다. 박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크게 밀렸음에도 최종 경선에서 이 후보를 턱밑까지 쫓아갈 수 있었던 것은 끈끈한 조직력 덕분이었다는 게 정평이다. 친박근혜계가 응집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계기는 이때부터였다.

비록 적장이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도 김 대표에 끌렸다. 원칙을 강조하던 박 후보 측 인사들 중 김 대표는 융통성과 유연성을 갖춰 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친이명박계가 당 주도권을 쥐고 있던 상황에서 이 전 대통령이 친박 좌장인 김 대표를 집권여당 원내대표로 택한 것은 그의 정치적 유연성 때문이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18대 국회 당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한-EU FTA(자유무역협정) 논의가 지지부진할 당시 원내대표를 맡은 김 대표는 여·야·정 관계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합의점을 도출해냈고 이로 인해 꼬인 정국도 실타래를 풀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원내사령탑을 맡았던 김 대표의 도움으로 원활한 국정운영을 할 수 있었다.


부침은 있었지만 박 대통령도 결국 김 대표에 도움을 청했다.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원내대표를 지내고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박 대통령과 노선을 달리하며 친박 좌장이란 타이틀을 내려놨지만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다시 그를 찾았다. 박 대통령 주변에 있던 소위 핵심 친박계 인사들 중 집권 여당의 거대 조직을 장악할 만한 정치력을 가진 인물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안철수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당시 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는 크게 위축됐었고 박 대통령은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킬 '소방수'가 필요했었다.


김 대표는 그해 10월 중앙선대위총괄본부장으로 복귀했고 대선 때까지 야전침대에서 생활하며 선거를 총지휘했다. 박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됐던 2012년 12월19일 그는 "그간 감사했다"는 편지만 남기고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4월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재입성 한 뒤 김 대표는 다시 '소방수' 역할을 했다. 작년 말 철도노조 파업으로 정국이 마비됐을 때 김 대표는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이던 박기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철도노조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합의점을 도출해내면서 극한 대립을 막았다. 당시 여야 정치권 모두 "모처럼 정치가 제 몫을 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김 대표는 두 번의 공천 탈락이란 정치적 시련을 겪었다. 한 번은 이명박 정부에서, 또 한 번은 박근혜정부에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두 정부 모두 위기 때 그를 '소방수'로 기용했고 결과는 모두 성공했다. 친박이었지만 친이계와도 소통이 가능했고, 비박이었지만 친박을 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란 평가는 이 때문이다. '무대(무성대장)'이란 그의 별명도 그의 이런 선 굵은 정치행보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김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서용교 의원은 "김무성 대표는 현실주의자다. 자기 주장만 고집하지 않고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다른 측근 의원들도 "다른 정치인과 달리 보스 기질이 있다. 그럼에도 권위적이지 않아 따르는 의원들이 많다"고 말한다. 실제 계파와 상관없이 의원들은 사석에서 그를 "형님"이라 부를 만큼 친화력이 뛰어나다.


당 고위 관계자는 "김 대표가 계파와 상관없이 의원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이유는 그의 정치에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대립과 반목만 반복하는 지금의 정치와 달리 인간적이며 타협과 합의가 가능한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가 친박 주류의 견제 속에서도 크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친박에 대한 당내 거부감 때문이라기 보다 김무성이 기존 정치와 달리 매력적인 정치를 해왔고 그에 대한 인간적 매력이 기대감으로 표출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당·청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전망도 분분하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그간 정치행보를 보면 두 사람의 충돌은 예측 가능하다. 원칙주의자인 박 대통령과 현실주의자인 김 대표 간 정치스타일이 분명히 다르고 일부 정치 이슈를 두고는 온도차가 크기 때문이다.


김 대표를 아는 인사들은 이런 전망에 손사래를 친다. 김 대표는 기본적으로 정치는 대립과 충돌은 타협으로 풀고, 위기는 만들지 않는 것이 기본이라고 본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그를 "현실주의자"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사익을 목적으로 한 박 대통령과의 충돌은 있을 수 없다"고 측근들은 말한다.


당내에선 오히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숨통을 터 줄 것이란 기대감이 더 크다. 김 대표도 14일 수락연설에서 "새누리당의 목표는 분명하다.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온 몸을 던지겠다"며 박근혜정부 성공의 최전선에 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경선 전에도 그는 "대통령과 각을 세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나와 박근혜 대통령은 운명공동체로 박근혜정부가 성공해야 다음 총선도 정권 재창출도 가능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내 갈등에 대해서도 "풍우동주(風雨同舟)라는 표현처럼 어떤 비바람이 불더라도 우리는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화합'을 강조했고 경선과정에서 충돌했던 서청원 의원에 대해서도 "서청원 선배는 7선의 관록과 경력을 가진 훌륭한 분"이라 치켜세운 뒤 "그 분의 경험을 잘 수용하고 수렴해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 걱정 마시기 바란다"고 했다.


김 대표는 차기 대선주자라는 타이틀에도 고개를 젓는다. 당 주류 측 한 관계자는 "지금은 김 대표도 그의 주변에서도 '차기 대권'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겠지만 이미 정치권은 그를 여권의 대선주자군으로 판단하고 있고 이는 김 대표가 거부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면서 "정치는 자기 의지가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주변의 요구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 뒤 "시계바늘이 대선정국으로 접어들면 자연스레 김 대표도 그 정국 속으로 흡입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대표는 사업가이자 제5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故) 김용주 전남방직 회장의 3남으로 태어났다. 김 대표는 또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외삼촌이고 친형인 김창성 전방 명예회장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지낸 재계의 거물이다.




최은석 기자 cha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