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창환 기자] 건강보험공단이 국내 제약회사 수십여 곳을 상대로 제기했던 원료합성 약제비 환수 소송에서 최종 패배했다.
이번 패소 인해 10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기대됐던 건강보험료 환수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으며 진행 중인 다른 소송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법리적인 검토가 부족한 상황에서 건보공단이 무리하게 소송을 진행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1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건보공단이 국내 제약회사를 상대로 제기했던 원료합성 약제비 환수 소송 6건의 상고에 대해 지난달 29일 기각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유한양행, 안국약품, 코오롱제약, 경동제약 등 총 21곳의 제약회사가 해당 소송에서 승소했다.
소송은 2007년 보건복지부가 원료합성 의약품으로 허가받은 이후 자체원료를 쓰지 않고 수입원료로 대체 생산해 시판해온 제약회사들의 주요 제품에 대해 평균 53% 가량 약가를 인하한 것이 발단이 됐다.
정부는 제약회사들이 의약품 원료를 직접 생산한 경우 보험약가를 높게 책정해주는 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해당 제약사들이 원료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외부에서 구입해 쓰면서 혜택을 받아온 것을 적발하고 약가를 인하했다. 건강보험공단은 이를 근거로 해당 제약회사들을 상대로 약제비 환수 소송을 2008년 제기했다.
건보공단이 승소 할 시 배상규모가 총 1000억원이 넘는 대형 소송으로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제약회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해당 소송은 건보공단의 패소로 마무리 됐다는 분석이다.
대법원은 제약회사들이 원료합성 생산 방식 변경을 정부에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이 크게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약회사들이 정부에 약가를 신청할 때 원료 제조업체가 기재된 제조품목허가증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했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에 해당 내용을 밝힌 것으로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관련 허가증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상황에서 약가 인하 혜택을 제공해 왔기 때문에 제약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에 따라 건보공단은 건강보험료를 회수하지도 못하고 6년 가량 진행된 소송비용 수십억원만 부담하게 됐다. 소송 제기 전에 충분한 법리검토가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이전에도 하급심에서 건보공단이 제약사들에게 계속 패소하면서 소송 전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면서 “이번 소송 결과로 인해 건보공단이 건강보험료 환수를 위해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제약회사들과의 소송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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