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건설노동자들이 아내·남편에게 쏜 '제주도 사랑여행 티켓'

시계아이콘02분 08초 소요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글자크기

건설노동자들이 아내·남편에게 쏜 '제주도 사랑여행 티켓' 건설근로자공제회는 매년 건설근로자들을 초청, 제주 여행을 보내준다. 이달 초에는 17쌍이 참여했다.
AD



"건강에 좋다 일 시작한 게 벌써 23년…앞만 보며 살다 제대로 여행간 적 없어"

[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열네살에 가구공장 막내로 입사했던 J씨(54)는 중ㆍ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스무살부터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40년간 목공 일을 하면서 '배움'에 목말랐던 그는 방송통신대에서 청소년교육학을 전공했다. 이어 인천대 대학원에 진학해 건축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다. 목공 기능장을 보유한 J씨는 3년째 일반 기능장 시험에 도전하면서 특수공업고등학교에서 '산업현장 강사'로 근무하고 있다.


#20년가량 도장 일을 해온 K씨(59ㆍ여)씨는 약 1년 동안 공장 건설현장에서 근무를 했다. 예순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밖에서 일할 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K씨는 에너지가 넘쳐 현장에서도 '젊은 언니'로 불린다. 요즘은 현장이 많이 줄어 형틀 일을 하는 남편과 함께 쉬고 있다. 수입이 없을 때는 벌어놓은 돈을 쓰다보니 노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청보리가 바람에 휘날리는 4월 초. 시종일관 긴장 속에 고된 육체노동을 감내해 온 일용직 건설근로자들이 작업복과 작업화를 벗어던지고 제주를 찾았다.


일용직 근로자들의 퇴직금을 적립ㆍ관리하는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주최한 제주 여행에는 방황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간 아들과 제주를 찾은 P씨(54)와 제약회사에서 15년간 근무하다 건설현장으로 자리를 옮긴 N씨(64)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참여했다. 17쌍의 근로자 가족은 새벽별을 보고 출근하는 건설근로자들답게 2박3일간의 짧은 여행기간 내내 '칼같이' 일정을 지켜 여행사 직원들을 놀래켰다. 마음 속에 맺힌 땀방울까지 날려보냈을까.


◆인정받는 여성 철근공이 된 사연= 현장에서는 열 명 중 한 명 남짓 볼 수 있는 여성 건설근로자도 이번 가족여행에 동행했다. 세종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철근을 담당하고 있는 M씨(56)였다. 남편이 운영하던 철근회사가 IMF로 문을 닫고, 교통사고를 당해 일을 못하게 되자 남편에게 배운 철근 가공기술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현장에 들여보내주지 않아 서러웠다는 그는 "일 못한다고 구박도 받았지만 이제는 칭찬도 듣고 안전상도 네 번이나 받을 정도가 됐다"며 "정직하게 살다보면 언젠가 주변에서 인생을 인정해주는 날이 온다"고 힘주어 말했다.


형틀작업반장이자 '엔돌핀 이모'라 불리는 K씨(64)는 지난해 3월 허리골절 사고를 당하고도 현장을 지키는 경우다. 지금은 전남 구례에서 근무하고 있다. K씨는 "건설현장 일을 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에 시작한 것이 어느덧 23년째"라며 "눈뜨면 일하러 갈 생각에 앞만 보고 살다보니 제대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기회가 생겨서 기쁘다"고 전했다.


15년간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다가 건설현장에 뛰어든 20년 경력의 N씨는 근로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N씨는 "손자가 할아버지처럼 좋은 집을 짓고 싶다고 말할 때 참 뿌듯했다"며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모두 현장 엔지니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근무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공제회의 복지사업 내역들을 다른 현장 동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작은 책자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건설노동자들이 아내·남편에게 쏜 '제주도 사랑여행 티켓' 건설근로자들이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추진하는 복지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건설근로자들, 퇴직금에 '애착'= 건설근로자들은 항상 불규칙한 근로환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장마철이나 겨울철에 근무할 날이 적은 것만 걱정했던 과거는 그나마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일감이 줄어들어 하루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한 달 평균 보름도 못 채워 가족을 책임질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새벽 인력시장에서 많은 이들이 건설현장으로 가는 버스에 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건설근로자들에게 퇴직금은 중요하다. 더 이상 건설현장에서 일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하루 4000원씩 퇴직금이 적립된다. 지난 1998년 법제화된 후 많이 오른 수준이 그 정도여서 퇴직금이라고 해봐야 '쥐꼬리'만 하다. 지난해 말 기준 공제 혜택을 받는 근로자 대상은 430만명이다. 공제회는 적립기간에 따라 1인당 평균 150만원씩 지급해왔다. 그래서 근로자들의 바람은 소형 현장에서도 퇴직금 적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주 여행에 참여한 한 근로자는 "단독주택이나 원룸처럼 소규모 사업장이 많은데 이런 곳도 퇴직금을 공제받을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퇴직금 적립해야 하는 대상은 공사비가 3억원 이상 공공공사, 100억원 이상 민간공사 현장이다.


공제회는 근로자들을 위해 다양한 복지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제주 가족 여행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교육훈련사업 ▲결혼ㆍ출산보조금 지원 ▲무료법률지원사업 ▲한가족탐방 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진규 공제회 이사장은 "하루하루 일에 매달리는 건설근로자들에게 잠시나마 일손을 놓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추진한 것이 건설근로자 한가족 탐방행사"라며 "앞으로 공제회는 더 많은 복지사업을 발굴해 건설근로자가 삶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설노동자들이 아내·남편에게 쏜 '제주도 사랑여행 티켓'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주관하는 '한가족탐방'에 참여한 한 부부가 제주도에서 서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