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 임혜선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의 제동으로 입점 업체로부터 판매장려금을 받을 수 없게 된 일부 대형 유통 업체들이 납품 업체들에게 '볼륨장려금(옵션장려금)'이라는 새로운 명목의 장려금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공정위는 지난해 10월 '대규모 유통업 분야에서 판매장려금의 부당성 심사에 관한 지침' 제정안을 의결하면서 대형 유통 업체가 매출 증가 여부와 상관없이 받아왔던 판매장려금을 금지했다. 납품 업체가 대형 유통 업체에 내왔던 판매장려금 규모는 연간(2012년 기준) 1조4690억원. 이 중 매출 증가 여부와 상관없이 상품 매입 금액의 일정 비율을 획일적으로 수령한다고 해서 공정위가 금지한 '기본장려금'은 2012년 기준 1조1713억원이나 된다.
하지만 일부 대형 마트가 판매장려금 축소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납품 업체에 볼륨장려금을 요구하거나 제품 납품가를 낮추도록 압박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판매장려금이란 판매를 늘려준 대가로 제조업체가 유통업체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리베이트. 최근에는 납품한 물건 값의 일정 비율을 징수하는 비용으로 변질되면서 납품 업체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납품 업체 관계자는 "대형 마트에서 볼륨장려금을 요구해 몇 개월째 협의 중"이라며 "판매장려금을 못 받는 데 따르는 손실을 다른 방법으로 보전하려는 대형 마트의 요구를 무시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대형 마트와 제조 업체간의 계약은 1년 단위로 이뤄진다. 지난해 말 대형 마트 A사와 계약이 만료된 납품 업체 B사는 재계약을 위한 협상에 돌입했지만 볼륨장려금 요구 때문에 두 달째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볼륨장려금은 납품액이 전년보다 증가하면 증가액만큼 제조 업체가 대형 마트에 지급하는 돈이다. 예컨대 남품액이 지난해보다 100억원 늘어났다면 대형 마트는 이 100억원에 대한 장려금을 받겠다는 것이다.
이미 대형 마트가 원하는 대로 계약을 체결한 납품 업체도 있다. 납품 업체 C사는 대형 마트 D사와 올 4월부터 장려금을 내는 대신 납품 가격을 낮춰 물건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C사 관계자는 "판매장려금으로 냈던 액수만큼 우리가 납품가를 낮추는 것"이라며 "공정위가 판매장려금을 금지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대형 마트가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판매장려금 금지는 막대한 수익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영업 규제 등으로 지난해 대형 마트 3사의 매출액은 대형 마트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1조원 이상 감소했다.
대형 마트 3사가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납품 업체로부터 받는 돈이 연간 1조원이 넘어 대형 마트의 영업이익에서 판매장려금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도 60%에 달한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결국 결과는 대형 마트가 원하는 대로 반영될 것으로 본다"면서 "정부가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지 않는 한 판매장려금 금지 방안은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허용되는 장려금 범위를 어떻게 산정하느냐에 따라 마트와 제조업체 간 온도차는 있을 수 있다"면서 "납품 원가도 물가 상승률, 원재료비, 판촉비, 물류비 등 여러 요인을 놓고 협의에 들어간다"고 반박했다. 이어 "적법한 절차에 따라 협의 중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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