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정보의 양과 권력은 비례관계다. 권력집단일수록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것은 역사에서도 살필 수 있다.
조선시대 기득권 세력의 척도는 한자였다. 한자를 많이 알수록 권력과 가까웠다는 얘기다. 조선시대 훈민정음이 널리 퍼지지 않은 것은 백성들이 문자를 깨우치면 기득권을 중심으로 한 정보 집중 구도가 무너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여기에 있다.
유럽에서는 로마제국이 멸망한 직후인 14세기 베네치아가 정보 강국으로 불렸다. 베네치아는 신성로마제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과 오스만투르크 사이를 오가며 해상무역을 하는 도시국가였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캐고 활용하는 게 이 나라의 생존방법이었던 셈이다.
신문과 텔레비전 등 미디어가 발달한 1990년대 후반 들어 정보와 권력의 상관관계에는 변화가 생겼다. 전세계 누구와 연결이 가능한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소위 '정보 접근권'이 대중화됐다. 말 그대로 정보의 바다 속에서 누구나 원하는 정보를 캘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정보의 독점 보다는 규모가 더욱 중요해진 계기가 된 것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요즘 각광받는 정보는 개인신상이다. 개인정보는 인터넷이 나오기 전까지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지 않았다.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이용한 신분 위장 정도만이 주목을 받았다. 개인정보보호법 시행과 각종 스팸문자가 난무하는 요즘과는 차원이 달랐다. 공개를 꺼리는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가 두꺼운 전화번호부에 버젓이 나올 정도였다.
개인정보의 인기가 치솟는 것은 디지털시대에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정보가 형성되고 금융거래도 가능해졌다. 신상정보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한 환경이 됐다.
정보 분석을 통해 패턴을 읽는 빅데이터산업이 대표적이다.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마케팅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일부 금융회사 역시 새로운 먹거리 산업이라며 분위기를 띄우는 상황이다. 개인정보를 상품처럼 사고파는 행위가 나타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반면 역기능도 있다. 정보의 활용 여부와 관계 없이 가급적 많이 축적하는 게 제일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많은 회사들이 개인정보 모으기에 혈안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발생한 1억건 이상의 카드사 정보유출 사고는 '개인정보의 접근과 취급'을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신용정보사 직원의 개인적인 범죄로 치부할 수 있지만 마구잡이식 정보 취득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동안 정보 집적이 권력ㆍ금전적 이득과 직결됐다면 앞으로는 많아질수록 오히려 불리한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보가 리스크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꼽히는 만큼 금융회사 건전성 평가에 반영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보가 많다는 것은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를 많이 보유할수록 약이 아닌 독이 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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