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미국 셰일혁명의 유탄은 엉뚱하게도 유럽으로 튀고 있다. 값싼 셰일오일과 가스가 대량 생산되면서 소비처를 잃은 미국의 석탄업체들이 유럽 수출을 늘리고 자체 석탄발전을 확대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재생에너지 대국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은 전기요금 상승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재생에너지 보조금을 줄이는 한편, 유럽 대륙에 지천으로 늘린 갈탄을 캐내 발전용으로 떼고 있다. 전기요금 억제라는 명분에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목소리는 쑥 들어갔다.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독일의 갈탄 발전은 지난해 1990년 이후 23년 사이에 최대를 기록했다.
유연탄의 일종인 갈탄은 태울 때 연기가 많이 나지만 발열량이 크고 값이 싸 독일과 폴란드, 체코 공화국 등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의 발전소들이 많이 사용하는 에너지 원이다.
독일 발전업체협회인 에네르기빌란츠에 따르면, 독일의 갈탄 발전량은 지난해 1620억킬로와트아워(㎾h)로 1990년 1710㎾h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재생에너지 발전량도 1470㎾h를 기록했지만 원자력 발전소의 단계별 폐쇄로 생긴 전력공급 공백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가스 발전소는 연료비에 발목이 잡혔다.
유럽 발전소는 값싼 미국산 석탄을 위해 레드 카펫을 깔아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석탄 수출은 2005년 5000만t에서 2012년 1억2600만t으로 급증해 연간 150억달러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 거의 절반이 유럽행이었다.
석탄화력 발전이 증가했으니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독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1년 9억1700만t에서 2012년 9억3100만t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2000만t이 더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U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사실상 포기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EU는 지난 22일 기존의 기후변화 대책을 위한 2030년 목표를 발표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40%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27%로 높이기로 했다. EU는 당초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기준으로 20% 감축할 목표를 설정했으나 이를 10년 연장하고 감축량을 40%로 확장하는 편법을 발휘했다.
전체 에너지 생산에서 재생가능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당초 2020년까지 20%로 끌어 올리기로 목표를 정했지만 이번에 27%로 높인 것이다.
그렇지만 EU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현재 1990년에 견줘 18% 감소한 반면, 생산량은 무려 45%나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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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런데도 석탄화력 발전이 증가한 것은 전기요금을 낮추기 위한 발전회사들의 고육책임인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입수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보고서 초안에 따르면, 유럽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미국보다 2배 비싸고 산업용 가스요금은 3~4배 비싸 발전업계는 요금인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원료비가 싼 석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 발전회사 에온의 요하네스 테이센 CEO는 미국의 셰일 오일과 가스 혁명은 미국 내 천연가스 가격을 유럽의 25%~33% 수준으로 낮췄다고 주장했다. 낮은 에너지 비용은 제품 생산 비용을 낮춰 결국 가격경쟁력 등 기업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집행위도 EU와 미국 간 에너지 가격 격차 요인으로 셰일가스 공급 급증을 꼽았다.
세계 최대 철강업체인 아르셀로미탈의 락시미 미탈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유럽의 비싼 에너지 요금 때문에 유럽의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고 독일 발전회사 에온의 요하네스 테이센 CEO도 미국의 에너지 가격 우위로 유럽의 중공업 분야가 유럽대륙을 떠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전기요금 상승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발에 직면한 발전업계나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돼 있다.
유럽에도 셰일 오일과 가스가 매장돼 있어 채굴하면 발전비용을 줄일 수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법으로 금지돼 있다. 겨우 영국과 폴란드만이 셰일가스 탐사와 채굴을 추진하고 있을 뿐이다. 유럽집행위원회는 지난 22일 영국과 폴란드가 강하게 압박한 셰일가스 탐사 입법 계획을 수질과 토양, 대기오염을 이유로 저지했다.
셰일 혁명에서 소외된 유럽은 환경보존을 위해 비싼 에너지 요금과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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