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벌어지고 있는 의료시스템 개편 논란은 드라마로 치면 시청자 무시의 불통 드라마다. 원격진료를 둘러싼 갈등은 특히 그렇다. 오지, 섬지역에 살거나 거동이 어려운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고도 컴퓨터ㆍ스마트폰을 통해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원격진료 아닌가. 그런데 정작 주인공인 '환자'의 목소리는 없다. 싸움판의 볼모일 뿐이다.
논쟁의 공수(攻守)부터 바뀐 꼴이다. 의사나 병원은 고객(환자) 편의를 최우선에 놓고 신기술을 접목해 진료의 폭을 넓히려고 노력하는 게 정상이다. 반대로 정부는 안전성을 따지며 새로운 진료 행태에 신중한 것이 '정부=규제'라는 통념에 어울린다. 현실은 반대다. 정부는 밀어붙이고, 의사들(정확히는 의사협회)은 절대반대, 타협불가다.
정보기술(IT)강국이란 말이 무색한 시대착오적 소동이다. 세상은 이미 원격진료나 IT와 의료서비스를 융합한 모바일 헬스(m 헬스) 시대에 성큼 들어섰다. 미국 의사의 80%는 스마트폰과 앱을 진료에 활용한다.
모바일 헬스는 스마트폰에 이은 제2의 모바일 혁명이다. 미국 MC10사가 개발한 진료밴드를 몸에 부착하면 센서가 심장박동, 체수분, 혈압 등 신체 빅데이터를 감지해 스마트폰에 넘긴다. 스마트폰은 이를 실시간 주치의에게 전송한다. 10초 내 응급실에서 요구하는 모든 인체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는 '만능 진단기'에 삼키면 몸의 이상을 감지하는 '전자 알약'도 나왔다.
한국은 어떤가. 논란의 역사는 10년이 넘었다. 2010년에도 정부가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냈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폐기됐다. 법은 막았지만, 현장의 의사들이 진단기술의 진전이나 의료기기의 혁신을 몰랐을 리 없다.
나는 지난해 병원의 큰 손님이었다. 종합병원에서 전신마취로 수술을 했고, 동네병원을 여러 번 찾았으며, 건강검진도 받았다. 의료계를 장악한 첨단기술은 놀라워 인술을 압도할 정도였다.
수술실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하복부를 뚫고 들어가 환부를 잘라 낼 로봇의 조종대(콘솔)였다. 의사의 정위치는 환자 곁이 아니다. 콘솔에 앉아 게임하듯 로봇을 원격 조종한다. 15배 확대된 3차원 영상을 보면서 로봇 팔로 빠르고 정교하게 환부를 도려낸다. 커피도 한 잔 하면서.
대당 30억원짜리 수술용 로봇 '다빈치'가 한국에 첫 상륙한 것은 2005년. 역사는 짧지만, 위세는 맹렬하다. 전립선 수술의 80%는 로봇이다. 세브란스병원에서만 로봇수술 1만건을 돌파했다. 단일 병원으로 세계 최초다.
수술 후엔 담당의사와 병원 블로그에서 만났다. 진료실에서는 2~3분도 마주하기 어려웠던 주치의가 블로그에선 딴판이었다. 진료차트를 인용하며 상태를 설명하고, 용태를 묻고, 위급 시 대처법도 알려줬다. 훌륭한 원격진료였다.
두드러기 증세로 동네병원을 찾을 때의 일도 떠오른다. 묘하게도 집을 나서면 증세가 잦아들었다. 의사가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찍어 오세요". 확대하자 선명한 두드러기의 실체가 드러났다. IT진료라면 IT진료다.
원격진료는 의사협회가 제기하듯 접근성, 사고의 책임, 쏠림 현상 등이 우려된다. 반면 환자 입장에선 편의성, 실시간 진료, 의료비 절감 등이 장점이다. 장단점을 떠나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기도 하다.
문제는 줄이고 장점은 극대화해야 한다. 지금도 늦었다. '어떻게 잘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그만큼 전문가인 의사들의 선도적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무조건 반대'를 외치다니, 그들만의 바벨탑 쌓기다. IT강국의 코미디다. 손으로 해를 가리려 한다면 그들은 5년 후, 10년 후 IT와 융합한 첨단 의료시스템의 희생자로 전락할 것이다.
박명훈 주필 pm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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