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의 대학 생활/내게 남겨진 건 350만원/부채뿐이다//대학에 들어올 때/나는 할 말이 많았다/나 자신을 향해서 친구를 향해서 세상을 향해서/그러나 나는 지금 아무 할 말이 없다//대학이 나를 과묵하게 만들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그러나 16년 동안 내게는 개학과 방학 두 계절뿐이었다//받아든 이 졸업장이 운전면허증보다 가벼울 지라도/나는 넓을 박자 알 식 자/넓고도 많이 아는 박사//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가 않다
한명희의 '박사 이후'
■ 전 시대 우리가 지녔던 지식인에 대한 많은 신화가 깨져갔지만 '박사'라는 말은 아직 조금 아우라가 남아있는 것 같다. '선생님'은 평어(平語)가 되고, '선생'은 심지어 비어(卑語)처럼 쓰이는 시절이 되었지만, 그래도 박사는 그 학식의 영역에서 존경이나 예우의 힘이 실려있다. 방송이나 신문에 등장한 많은 박사들이 스스로의 전문영역을 벗어난 곳까지 모든 것을 다 아는 마당발지식인으로 행세해온 관행들이 대중에게 이미지를 축적한 것일 수도 있다. 박사에 대한 과신(過信)과 과경(過敬)은, 그들이 전공하지도 않은 비전문 영역에 대해 아는 척 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게 만들었다. 어이없는 중시(重視)를 받으며 제동 없이 쏟아지는 박사 아마추어리즘들이 여론을 혼탁시키고 오도하는 데 앞장 서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도 이 말은 내가 아직 박사가 못된 것이 배가 아파서 뱉는 말일 것이다. 박사과정에 뒤늦게 용케 입학은 했으나 수료한 뒤 신문사 업무에 쫓긴다는 핑계로 논문을 미뤄놓았다. 집중하여 학구적인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갈수록 떨어져서, 저 시인처럼, 넓을 박자 알 식자의 누대(樓臺)에 오를 기회가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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