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연말연시. 편집국 언어로 바꾸면 '특집시즌'이다. 1년차로부터 차장, 부장, 국장 할 거 없이 모든 기자가 연말특집이나 신년특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뭘 쓸 것인가?" '꺼리'를 찾는 아이디어 단계도 막막하지만 정해진 주제로 기사를 써내는 일도 만만치 않다. "기사만 안 쓰면 기자도 참 좋은 직업"이란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아무리 막돼먹은 기자의 세계라지만 무턱대고 강압적이진 않다. 바쁜 시간을 쪼개 부서별로, 차장들이 삼삼오오 모여, 데스크회의에서 부장들끼리, 브레인 스토밍도 하고, 아이디어를 한데 모아도 보고, 다시 모여 토론도 하고, 늘려도 보고, 추려도 보고, 짜깁기도 해보고, 다시 쪼개 일일이 소제목을 달아도 보고, 이렇게 법석 떨고 닦달해 대도 결국 매년 각 신문의 연말연시 특집은 그렇고 그렇기 일쑤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이런 사태가 불 보듯 뻔하기에 올해는 좀 달리 접근하기로 한 것이다.
몇 가지 원칙을 잡았으니 첫째는 남보다 먼저 준비하는 것이다. "시험에서 늘 1등 하는 기막힌 방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시험공부를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것"이라는 어떤 선생님의 잔소리에서 힌트를 얻었다. 아무리 그래도 3,4월부터 '연말연시'를 준비할 수는 없는 일, 한참 기다리다 10월부터 그 틀을 잡기 시작했는 데 이 전략은 나름 효과가 있었다.
두 번째는 머리(일테면 현장감이 떨어지는 부장급 이상)와 손발(숲속에 살지만 숲을 못보고 나무에 천착하시는 기자님들) 대신 허리를 쓰는 것이었다. 자칭 '편집국의 허리'라는 차장급(그래서 그토록 허리가 뻣뻣하신 것일까) 기자들이 아래 위 눈치 보지 않고 현장의 감을 살려 아이템을 잡아보는 전략이었는 데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시의적절하고 울림도 큰 '묵직한 꺼리'를 몇 건 건졌다.
세 번째는 일명 '담장 허물기' 전략이었다. 기자들은 그 속성상 자기 영역을 벗어나 남의 울타리에 들어가는 걸 금기시하고 있는데 적어도 특집에서만큼은 이런 터부를 깨기로 한 것이다. 바둑이나 장기, 심지어는 남과 녀의 은밀한 연애에서조차 '제 3의 시선'이 빛을 발하는 법, 즉 훈수를 할 때 더 수가 잘 보이는 법. 국제, 정치, 경제, 산업, 부동산, 금융, 사회, 문화 등 서로 상대방의 텃밭에 군화발로 쳐들어가 '꺼리'를 건져 올리는 '이전투구'의 장을 연출한 것인데, 짜릿짜릿 흥미진진 팽팽한 긴장감이 넘실댔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참사가 몇 건 있었으니 이제부터 그 피비린내 나는 목격담을 전하려 하는 것이다.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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