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성희 기자] 지난해 대선을 코앞에 둔 12월16일 밤, 경찰이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대선후보 비방·지지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증거분석 결과를 발표해 수사 축소·은폐 의혹을 불러일으킨 데 대해 김기용 당시 경찰청장은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은 했지만 결과가 나오는 대로 발표하자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범균) 심리로 열린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기용 전 청장은 “보도자료를 받아본 건 다음날 아침이고 16일 밤엔 구체적인 분석결과 내용을 몰랐지만 국민의 관심이 큰 상황에서 결과가 나오는 대로 발표하자는 것에 이견을 낼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대선을 앞두고 있고 밤 늦은 시각이므로)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발표시기를 다시 검토해보라는 지시는 하지 않았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속으로는 생각했었지만 그런 지시를 내린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법과 원칙대로 하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기용 전 청장은 이날 공판에서 국정원 여직원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검찰 쪽과 상의해보니 영장신청 요건이 불충분해 적절치 않다고 하기에 보류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김용판 전 청장 측 변호인이 “서울청에서 영장 신청을 하려 한다. 맡겨달라며 재차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김기용 전 청장은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앞서 김용판 전 청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한 의혹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 조사 결과 서울경찰청은 증거분석 과정에서 이미 확보한 단서조차 실제 수사를 맡은 수서경찰서에 넘겨주기를 거부하며 수사를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다음달 19일로 예정됐던 피고인 신문을 같은 달 12일로 앞당겨 진행하기로 했다. 다음달 19일 양측의 주장을 정리하고 피고인 최후변론을 끝으로 심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양성희 기자 sungh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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