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최근 한 '진보 언론'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에 대해 "한국 보수의 '국가 포기 선언'"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비판했다. 이처럼 요즘 진보 진영은 "보수 진영이 국가 기구를 분파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며 "이런 사람들과 공동체를 같이 꾸려나가야 하냐"는 불만이 높다.
반면 보수 진영에선 일부의 행실을 문제 삼아 야당을 비롯해 진보 진영을 '종북'으로 규정하며 "북으로 가라"고 외친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며 대한민국의 건국 세력들을 무시하는 진보 진영들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왕 자체가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었던 왕조 시대 때야 그렇다 치고, 지금의 대한민국 시민들은 도대체 왜 '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가? 같은 핏줄인데다 몇만년인지는 모르지만 한군데에서 살아 왔으니 그냥 같이 사는 것인가?
대학 시절 읽었던 루소의 '사회계약론' 등을 되새겨 보면, 한 국가ㆍ사회의 구성원들이 굳이 모여서 사는 이유에 대해 서양 철학자들은 "보다 안전하고 지속ㆍ발전가능한 공동체를 위해 상호간에 약속 또는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ㆍ제도들과 그 속에 녹아 있는 주권재민, 삼권분립,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 등의 원칙은 이같은 사회계약론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들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의 현실을 보면 의문이 든다. 국가ㆍ사회라는 것도 일종의 '공동체'이고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같이 공유하고 지키기로 합의한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진보-보수간 갈등을 보면 도무지 그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시민들의 안전과 외적으로부터의 침입을 막는 것,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하는 일 외에, 우리 사회의 좌우를 막론한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꿈꾸고 지향하는 국가ㆍ사회의 모습이라는 게 과연 있기는 있는 걸까?
지금의 이 같은 '파행'은 아마도 짐작컨대 우리나라의 '파행적' 근현대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왕조 붕괴가 식민지 시대로 이행된 후 독립 과정에서도 스스로의 각성과 노력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정부(국가)가 일방적으로 수립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지향할 지에 대한 구성원들의 토론이나 경험적 체득ㆍ합의가 없이 서양의 국가ㆍ사회에 대한 이론ㆍ철학이 일방적으로 이식됐으니, 사람 몸으로 치면 머리가 텅 빈 것인 셈이라고 할까.
요즘 우리나라에선 그나마 합의된 듯했던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든다. 지난해 대선에서 벌어진 일련의 국가 기관들의 선거 개입 사건은 더욱 확산되면서 '대선 불복'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언론ㆍ출판ㆍ집회ㆍ 결사의 자유도 예전보다 위축됐다는 평가가 많다.
인류가 전쟁의 참화와 홀로코스트 등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얻어낸 자유를 한국은 비교적 손쉽게 얻어낸 것의 후유증일까. 한국의 민주주의 실현과 '정상 국가'의 건국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 아니 어쩌면 새로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대한민국 2013년 늦가을의 풍경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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