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이래 조합원 75% 탈퇴…남부지역 외국계 회사 공략
[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위기의 미국 자동차노조(UAW)가 남부지역 공략에 나섰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UAW가 지난 30년 동안 발을 들이지 못했던 미국 남부지역에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면서 그 배경과 현지에서 벌어지는 찬반 공방을 보도했다.
테네시, 앨러배마, 캔터키, 미시시피 등 미국 남부지역은 노조를 반대하는 정서가 뿌리 깊고 강하다. 이 지역에서는 노조를 조직하려는 사람을 ‘외부 선동가'(outside agitator)라고 불렀다. FT 기사도 이 제목으로 게재됐다.
◆ 폭스바겐 공장이 타깃= UAW는 테네시주 채터누가 소재 폭스바겐 공장을 첫째 목표로 잡았다. FT는 채터누가 사업장에서 노조가 조직되는지가 UAW에게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채터누가 폭스바겐 공장에 노조가 설립되면 앨러배마주 투스칼루사의 다임러 사업장에 영향을 미치고, 노조 설립 바람이 다른 공장에도 불게 된다고 내다봤다.
채터누가 공장 근로자는 노조 설립을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로 갈려 대립하고 있다. FT는 채터누가의 폭스바겐 생산직 근로자 2400명 중 절반 이상이 UAW가 자신들을 대표하도록 한다는 가입신청서를 모은 뒤 사측에 협상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사측은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노조 설립에 반대하는 근로자도 600명에게서 서명을 받았다. 이들 중 일부는 노조 가입신청서에 속아서 서명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미국 투자전문 일간지 인베스터스 비즈니스 데일리에 따르면 일부 근로자들은 UAW가 속임수로 노조 가입 카드에 서명하게 했다며 UAW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다임러가 앨러배마주 투스칼루사에서 가동하는 메르세데스벤츠 공장도 노조 바람에 들썩이고 있다. 이 곳에서는 근로자 약 3000명이 메르세데스벤츠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만들고 있다.
◆ 독일계는 노조에 반감 덜해= 채터누가 공장 근로자들은 직업훈련 과정에서 독일 현장실습을 거치면서 상당수가 노조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다. 또 폭스바겐 사업장 중 노사평의회가 없는 곳은 채터누가뿐이라는 데 주목했다.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들고 안정적으로 근무하려면 노조를 설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됐다.
이는 UAW가 미국 남부지역의 여러 외국계 자동차 공장 가운데 독일계 회사를 겨냥한 배경이다. 미국 남부지역에는 채터누가 소재 폭스바겐과 투스칼루사의 다임러 외에 미시시피주 캔턴에 닛산이, 앨러배마주 몽고메리에는 현대자동차가,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에는 기아자동차가 진출했다. 일본 도요타와 혼다, 독일 BMW도 미국 남부지역에 진출해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많은 외국계 자동차 공장 중 아직 어느 한 곳에도 노조가 설립되지 않았다.
노조 불모지대인 미국 남부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UAW는 독일 금속노조(IG메탈)와 손을 잡았다. 앨러배마 콜링에 있는 UAW 사무실 문에는 UAW의 로고와 함께 IG메탈과 다임러 노동평의회의 로고가 붙어 있다.
IG메탈은 2007년 외국 노조와 연대해 글로벌 슈퍼노조 활동을 추진한다고 밝힌 이래 해외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IG메탈은 지난 2011년 10월에는 대표단을 미국에 보내 미국 철강노조(USW)와 함께 미국 내 독일 기업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 UAW 사활 남부지역에 걸었다= 남부지역 자동차 공장 노조 설립은 UAW의 미래가 걸린 목표로 여겨진다. 캘리포니아대학 샌터바바라 캠퍼스의 노동연구소장 넬슨 리히텐스타인은 “밥 킹 UAW 위원장이 노조 조직에 실패하면, 노조는 한동안 존재하겠지만, 자동차산업은 비노조 임금체계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노조는 제조업이 기울면서 힘이 빠졌다. 노조조직률은 한때 35%를 기록했고 1980년대만 해도 20%선이었지만 이제 11.3%로 하락했다. 민간부문 노조조직률은 6.6%로 공공부문보다 훨씬 낮다.
UAW도 큰 타격을 받아 1980년 이래 조합원의 75%가 노조를 탈퇴했다. UAW로서는 여러 외국 자동차회사들이 진출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 남부지역에서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 뿌리 깊은 정서 바뀔까= 메르세데스벤츠 US 인터내셔널의 제이슨 호프는 독일 노조는 합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미국 노조와 다르다고 본다. 이 회사는 다임러의 투스칼루사 공장을 운영하는 법인이다.
노조에 반대하는 찰리 헤이우드 팀장은 “UAW는 근로자보다 신규 조합비에 더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노조 설립을 둘러싼 논란은 사업장 밖으로 확산됐다. 테네시주의 빌 해슬램 주지사는 노조 설립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폭스바겐 경영진을 압박하고 있다. 노조가 들어서면 투자자가 테네시주로 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투스칼루사의 법무법인 태너앤드귄의 토마스 스크로긴스 변호사는 노조가 설립되면 이 곳도 디트로이트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본다.
UAW의 콜링 사무소에서 멀지 않은 20번 주간고속도로 변에는 노조 반대파에서 붙인 이런 주장이 광고판에 붙어 있다. “UAW에 ‘노’라고 대답하라. 앨러배마는 패자가 아니라 승자의 고향이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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