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vs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어떤 지점에서 충돌했나
靑 "국민연금 연계해야 유리" 福 "국민연금 흔들릴 우려 커"
노후대책 없는 현재 노인·지속가능성 측면에선 靑 방식 유리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내가 반대하는 제도로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며 사퇴 의사를 밝힌 '기초연금 제도'의 문제점은 이제 막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을 통해 노후 생계를 어느 정도 준비한 사람은 일종의 '최저생계 지원' 개념인 기초연금을 조금 덜 받아도 된다는 게 청와대가 마련한 '국민연금 연계안'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 가입을 지속하거나 새로 가입할 동기가 줄어들어 제도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 진 장관이 말하는 '양심'이란 것은 바로 이 측면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陳, 국민 설득 쉬운 '소득 연계안' 선호한 듯
진 장관은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엮지 말고 단순히 '소득'에 따라 돈을 차등 지급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어차피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면 '소득 많은 노인은 적게, 적은 노인은 많게'가 후퇴하는 공약의 대안으로서 국민을 설득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의 반대를 샀다. 기초연금을 65세 이상 노인 100%에서 70%로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노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기초연금 재원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반면 국민연금 장기가입자에게 돈을 적게 줄 경우(국민연금 연계안) 노인의 국민연금 가입률이 낮은 현재는 소득 연계안보다 돈이 더 들지만, 가입률이 상당히 높은 젊은 층이 노인이 되면서 전체 노인 중 연금 가입자 비율이 크게 올라가면 장기적으로는 재원 증가율을 낮춰갈 수 있다. 제도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청와대 방식이 유리한 것이다.
◆소득파악의 부정확성이 불공평 유발
청와대가 우려한 두 번째 이유는 '소득파악'이 정확하지 않다는 현실 인식이다. 노인의 소득이란 대부분 부동산 등 재산에 따라 결정되는데, 예컨대 재산이 많으면서 명의를 자식에게 돌려놓고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기초연금을 많이 받는 노인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낮은 임금활동을 하는 노인들은 소득이 공개돼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는 불합리가 발생할 수 있다. 노인들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근로ㆍ재산소득의 총합에 따라 돈을 징수하는 대표적 준조세인 건강보험료의 경우도, 특히 자영업자나 재산은닉자들의 부실한 소득파악률이 항상 형평성 문제를 일으켜 왔다. 진 장관은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취한 적은 없지만 어쨌든 국민 정서상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소득 연계안이 제도 도입 단계에 저항성이 적어 이를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충돌지점은 두 번째의 연장선에서, 현재 노인에게 무엇이 더 유리한가 하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기초연금 20만원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핵심 이유는 ‘자식 뒷바라지, 나라 산업화에 기여하느라'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지금의 빈곤 노인을 돕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비록 대상 노인이 100%에서 70%로 축소되긴 했으나 70%의 대부분이 20만원을 온전히 받을 수 있다는 점은 현재 노인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정책이다. 반면 소득 연계로 할 경우 현재 노인 중 소득파악이 잘되지 않는 지점에서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박 대통령의 목표 달성에 불리한 측면이 있다.
◆스웨덴 '시행착오' 뛰어넘는 파격의 어색함도 혼란 유발
여러 측면에서 진 장관이 국민연금 연계방안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지만, 굳이 '항명' 소리를 들어가며 반대에 나선 건 당장 있을 국민연금 가입자의 불만과 그로 인해 연금제도가 흔들릴까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대혼란 사태를 맞으면 복지부 장관으로서 최대 불명예를 안고 강제 퇴진에 몰릴 수도 있다.
한편 청와대가 국민연금 연계방안을 고집한 데는 장기적이며 포괄적 고민도 들어있다. 이미 국가예산의 최대 항목으로 떠오른 복지재원의 증가속도를 완화하려면, 기초연금 지급 대상자를 지속적으로 감소시켜야 할 동기가 생긴다. 즉 더 많은 사람이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하도록 유도해야 기초연금 지급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오히려 국민연금 제도 정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모델로 삼고 있는 '스웨덴 연금제도'가 주는 시사점도 참고했다. 과거 스웨덴은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처럼 모든 노인에게 일정 연금을 지급하고, 그 위에 개인 노후대책이 얹히는 보편적 보장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재정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 이를 크게 개편했고 지금은 노인 절반가량만 우리의 '기초연금'과 같은 돈을 받고 있다. 그러나 '보편적 기초연금'을 대선공약으로만 경험한 상태에서 중간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스웨덴의 개혁안을 도입하려 하니 '어차피 갈 방향'임에도 대중적인 '불편함'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강하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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