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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로, 웰빙로, 에메랄드로…대한민국 주소 맞나?"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28초

내년 도로명주소 사용 앞두고 외국어·종교식 명칭 혼란…종교·문화계 “전통문화 향유권 침해” 반발 헌법소원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디지털로, 웰빙로, 에메랄드로, 사파이어로…도대체 어느 나라 주소야?"


내년부터 도로명 주소가 유일한 공법 관계상 주소로 사용될 예정인 가운데 국적 불명이거나 뚜렷한 원칙·기준이 없이 주민들의 선호만 고려해 지어진 도로명이 많아 논란을 빚고 있다. 특히 일부 종교·문화계가 이 같은 '이색 도로명' 주소들에 반발해 위헌 소송까지 제출하며 강력 반발하는 등 도로명 주소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28일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새 도로명 주소의 상당수에 도로 특성을 잘 알 수 없는 외국어 등이 남발되고 있다. 정체불명의 외국어 이름이 붙은 대표적인 사례는 인천 서구 청라지구·연수구 송도지구, 구로구 등이다. 지난해 11월 인천 서구는 청라지구의 도로명 주소를 '크리스탈로' '사파이어로' '에메랄드로' '루비로' 등 보석 이름을 딴 이름으로 고시했다.


청라지구 사업시행자가 마련한 '서해의 푸른 보석'이라는 사업 계획에 담긴 이름이 그대로 도로명 주소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청라 주민들은 의견 수렴 과정에서 "국제도시답게 세련돼 보인다"며 다수가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송도지구도 '센트럴로' '하모니로' '벤처로' 등 7개 도로에 외국어 명칭이 붙었다. 구로구 디지털로, 전남 진도 웰빙로 등도 비슷한 사례다. 이 중에는 기업체·주변 상인들이 '홍보'를 위해 지자체에 요구해 도로명 주소를 바꾼 경우도 있다.

한편 특정 종교 색채가 반영된 도로명 주소에 대해선 지자체마다 입장이 오락가락해 혼란을 낳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사찰 이름이 들어간 강북구 수유동 '화계사로'를 '덕릉로'로, 성북구 보문동 '보문사길'을 '지봉로'로 바꾼 반면 충북도는 '보은 법주사로' 등 사찰명이 들어간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한불교청년회 등 일부 종교단체와 문화·학계 인사들이 최근 도로명 주소 사업에 대해 "전통 문화 향유권을 침해했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대한불교청년회와 박호석 지명연구가, 정동채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63명은 지난 6월 "새 도로명 주소법으로 인해 등기부에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담지 못하고 오랜 세월 써 온 법정 지명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됐다"며 "이는 헌법에 명시된 전통문화 보존 의무에 반할 뿐만 아니라 문화 향유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디지털로(서울 구로구), 웰빙길(경남 남해군), 토굴새우젓길(충남 홍성군), 엘씨디(경기도 파주시) 등을 "전통을 무시하는 부적절한 지명"이라고 지목하면서 "정책 입안과정에서 충분한 국민적 논의를 거치지 않았고, 서구적 도로명이 편리하다는 안행부의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지침에 따라 졸속 추진되면서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와 역사가 말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도로명주소법은 추구할 공익이 미미한 것으로 헌법에 명시된 민족문화 창달 및 전통문화 보존 의무에도 명백히 반하고 문화향유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담당부처인 안행부 측은 "위헌이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이처럼 논란이 잇따르는 것에 당혹해하고 있다. 안행부 관계자는 헌법소원 제기에 대해 "다양한 의견 표출의 하나로 보고 있다. 도로명 주소로 공적 주소가 단일화된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법정 주소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 만큼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색 도로명 주소'에 대한 반발에 대해선 "뜬금없이 보이지만 현재의 지역적 특색과 지자체, 주민의 의견이 반영된 것들"이라며 "꼭 전통적으로 사용된 것만 문화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들의 입장은 강경하다. 조영규 대한불교청년회 사무총장은 "우리의 문제 제기는 역사성, 전통성 있는 지명을 정부가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라며 "국민 70% 이상이 아직도 잘 모르는 도로명 주소를 전통문화를 훼손하면서까지 왜 굳이 강행하려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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