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서양 속담으로 큰 틀에서의 합의는 쉽지만 세부 사항을 정함에 있어서는 의견을 모으기가 어려운 현상을 표현하고 있다. 협상의 대체적인 방향성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나 막상 세부 사항을 정해 갈 때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경우 자주 쓰는 말이다.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자주 겪는 문제다. 건설 분야에서의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한두 해 전 최저가낙찰제 확대가 쟁점이 되었을 때 그 대안으로 최고가치낙찰제가 거론된 적이 있었다. 가격만 보지 말고 종합적인 평가를 하자는 취지로 제시된 방안으로 보이는데 적절한 명칭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세금을 집행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최고 가치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언제 구체적으로 어떤 입찰제도를 적용할지는 발주자가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마침 최저가낙찰제의 평가와 입찰제도 개선방안 논의가 정리되면서 종합평가낙찰제를 도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 같다. 중간 정도 규모의 공사에 대해서는 가격과 그 외 요소들을 종합하여 낙찰자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그 외의 요소들을 무엇으로 할 것이며 가격과의 종합평가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쟁점은 있지만 명칭 변경은 올바르게 이루어진 것 같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최고가치낙찰제 차원에서 본 입찰제도의 완결된 모습을 그려 보도록 하자. 공사 규모가 크고 복잡할수록 입찰 비용이 더 들더라도 낙찰자 선정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개인이 집 한 채 살 때와 연필 한 자루 살 때 접근을 달리하듯 국가가 조 단위 공사를 집행할 때와 억 단위 공사를 집행할 때는 방법을 달리해야 하지 않겠나.
종합낙찰제와는 달리 작은 억 단위 공사를 할 때는 평가가 어려운 비가격 요소의 비중을 낮춰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격만 따질 경우가 합리적일 수 있다.
조 단위의 큰 공사를 할 때는 비용이 들더라도 비가격 요소를 중시하고 가격 요소와의 합산 방식도 공식에 의하기보다는 전문가들의 다단계의 주관적 평가에 의존하는 것이 합당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공사의 성격에 따라 적합한 입찰제도를 찾아가는 것이 최고가치낙찰제다.
건설근로자에게 적정 임금을 찾아 주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경제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체불 노임 문제를 해결하고 제때 제값을 주자는데 누가 반대 의견을 달 수 있겠는가. 문제는 역시 적정 임금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디테일에 있다.
건설근로자 입장에서는 임금이 높을수록 좋고, 민간이든 공공이든 발주자와 건설업체의 입장에서는 높은 임금에 따른 건설 비용의 증가는 반길 만한 일이 아니다.
적정 임금에 대한 타협의 접점을 찾아야 선의의 정책이 집행 가능한 제도로 현실화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건설협회가 정부의 위탁을 받아 시장조사를 통해 세부 직종별 시중노임단가를 발표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공사의 입찰예정가격을 산정하는 데 기초가 된다. 정부가 시중노임단가를 공사의 예산을 책정하는 데 쓰고 있다면 이 잣대야말로 적정 노임의 정당한 기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시할 수 없는 세부 사항이 하나 더 있다. 건설업체가 업종별 시중노임단가와 설계에서 정한 인력의 품으로 임금총량을 지급한다면 공사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 절감을 위한 기술개발 유인이 사라진다.
따라서 임금의 수준은 반드시 지키되 품의 절약은 건설업체의 몫으로 인정해야 바람직한 경쟁이 이루어질 것이다.
명칭만 봐서는 반대할 명분이 없는 사안에 있어서도 세부 사항에 들어가면 온갖 역풍을 맞게 되어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집행되지 못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명분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디테일에서 실리적인 합의를 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김흥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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