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어제 '연명의료의 환자결정권 제도화 권고안'을 확정하고 정부에 특별법 제정을 건의했다. 회생할 가능성이 없고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 환자 본인과 가족, 병원윤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권고안을 바탕으로 올해 안에 특별법 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그동안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법적 근거가 없어 존엄사 논란이 컸다. 생명권을 포기하는 반인권적 행태라는 주장과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고통인 만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 왔다. 2009년 대법원이 식물인간 상태에서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던 김모 할머니의 존엄사를 인정한 이후 논쟁은 더 거세졌다. 권고안은 존엄사 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 합의 의견으로 의미가 있다.
권고안은 환자가 생전에 연명치료 중단의 뜻을 담은 사전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 등을 작성했을 때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환자의 뜻을 잘 알 수 없을 경우엔 가족 2인 이상의 진술을 토대로 인정하는 안을 제시했다. 환자의 뜻을 도저히 알 수 없을 때엔 적법한 대리인이나 가족 전원의 합의, 병원윤리위원회가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추정이나 대리인에 의한 의사표시를 폭넓게 인정한 셈이다.
어렵게 나온 권고안이지만 논란의 소지가 있다. 가족의 진술만으로 환자의 뜻을 추정할 때 악용 또는 남용의 위험이 따른다. 가족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또는 유산분쟁 등의 문제로 본인 의사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법제화 과정에서 제3의 기관에서 환자 뜻과 가족의 진술 등을 확인하는 절차를 두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생명은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그렇지만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기계에 의존해 목숨을 이어가는 것을 존중받는 삶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본인에게는 물론 가족에게 큰 고통일 수 있다. 이제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잘 죽는 것도 권리로 인정해 줄 때가 됐다. 존엄사에 대해 중의를 더 모아 신중하게 접근하되 입법화를 미룰 일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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