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세계 전기자동차 업계에서 '혁신의 상징'으로 간주되던 이스라엘 벤처기업 베터 플레이스(Better Place)가 현지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이스라엘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던 회사 창업자 샤이 아가시가 착탈식 배터리를 이용한 간편한 충전이라는 아이디어로 사업을 추진했지만 실적 부진이 지속되면서 결국 좌초한 것이다. 그러나 샤이 아가시를 비난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전기자동차의 강국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후즈파(Hutzpa, 당돌함ㆍ오만ㆍ뻔뻔스러움 등을 의미)' 정신으로 무장한 그가 또 다른 아이디어로 재기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스라엘 벤처기업은 대부분 투자로 자금을 조달하므로 기업이 파산해도 창업자에게 거의 책임을 묻지 않는 구조다. 그 결과 창업자는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고 개별 기업의 실패는 그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도전적으로 창업에 나서고 있으며 이는 세계 경기부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경제가 활황세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 경제는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내수 부진과 중국, 일본 등과의 경쟁 심화에 따른 제조업의 부가가치 감소 등으로 잠재성장률이 계속 하락하는 등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잠재성장률은 현재 3.6%에서 2030년대에는 1.9%, 2050년 이후에는 1.0% 이하로 하락할 것이라고 한다. 무조건 열심히 일해 효율성을 높이는 성장 방식은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한국 경제가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효율성보다 창의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성장전략이 필요하다. 따라서 신정부가 '창조경제'를 정책의 화두로 설정한 것은 대단히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다. 특히 벤처ㆍ중소기업의 경우 기술과 서비스를 통해서 전 세계 여러 시장을 개척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창조경제를 구현하는 핵심적인 존재다.
창조경제의 성공을 위해서는 '벤처ㆍ중소기업의 도전을 장려하는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필자는 금융당국이 제시한 성장 사다리펀드, 코넥스 시장 및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성장사다리 펀드는 올해 하반기부터 3년간 6조원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며 정책자금이 리스크를 적극 부담함으로써 혁신형 중소기업에 모험자본을 공급해 줄 것이다. 이달 개장한 혁신형 중소기업 전문시장인 코넥스와 온라인 소액증권공모를 허용하는 크라우딩 펀딩 제도는 중소기업의 금융접근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해 줄 것이다. 제대로 안착된다면 '창업-성장-회수ㆍ재도전'이라는 기업성장 생태계(ecosystem) 전반에서 금융환경을 투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창조경제는 우리 경제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열쇠다. 한국증권금융도 본연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해 창조경제의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창조금융 기반 마련을 위한 증권유관기관 공동 펀드'에 참여했으며 코넥스 상장기업의 우리사주제도 도입도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사회공헌 차원에서 실패기업가의 개인회생 절차와 관련한 비용과 이들 자녀를 위한 학자금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
샤이 아가시는 자신이 죽으면 신문 부고란에 이렇게 나길 바란다고 한다. "그는 감히 꿈을 꾸었다(He dared to dream)."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감히 꿈을 꾸게 해 주는 것, 그것이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박재식 한국증권금융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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